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생각은 마을과 그들이 사는 집과 무관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집엔 각자의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자주 쓰는 탁자를 보면 그 사람의 심경이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궤적에 닿는 모든 것 중 무의미한 것은 없고, 연유가 없는 것 또한 없다.
내가 생활하는 마을.
나의 집에는 각자의 삶이 녹아있기 마련이니,
그것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동양의 가옥과 서양의 가옥을 살펴보며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려 한다.
<기둥> 을 중심으로 -동양
이 글을 쓰는 무렵에도 이슬비가 왔다.
동양은 강수량도 많고 집중호우도 내린다.
땅이 쉽게 물러지기에, 무거운 벽은 쉽게 무너지고 만다.
그 때문에 조상들은 벽 대신 '나무'를 기둥으로 세웠다.
하지만 비가 지나가면 단단하던 나무에도 균열이 인다.
우리 조상들은 습기가 나무에 닿지 못하도록 공을 들여야 했다
돌을 두고 위로 나무 기둥을 세워
아래로 올라오는 습기를 막고
서까래를 외부로 길게 늘여
처마가 들이치는 빗물을 막도록했다.
이렇듯 동양건축은 기둥을 중심으로 한다.
<벽> 을 중심으로 - 서양
서양은 동양만큼 비가 많이 오지도 집중호우가 있지도 않다.
비가 적게 오는 단단한 땅은 무거운 벽도 거든하다.
서양의 건축은 벽을 중심으로 한다.
그들은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었지만.
벽에 구멍을 뚫으면 벽이 약해지는 탓에 창을 크게 낼 수가 없었다.
창이 커지면 벽이 두꺼워야 하기에
돈이 많이 필요하다.
그때문에 궁전같은 곳에서만 큰 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창은
유리는 귀해, 서민들이 사용하기 어려웠으므로
나무 덧문으로 여닫았다.
이렇듯 서양건축은 기둥을 중심으로 한다.
<장식과 개인> - 서양
창문이 작은 서양에서는
안보다 밖에서 집을 보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연히 보여지는 집의 외관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적인 요소.
화려한 장식들
종교적 상징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의 건축은 주변환경과 어우러진다기보다는 상징적인 기능을 하는 일이 많았다.
작은 창문을 두고 밖에서 건물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안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서양은 안과 밖의 구분이 명확하다보니
나와 너의 구분을 확실시 하고, 개인단위의 생각이 주로 이뤄졌다.
벽을 두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나의' 개성과 '나의' 능력에대해 생각했다. 서양의 개인주의 성향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장식과 개인. 이 두 키워드로 서양의 가옥을 요약할 수 있겠다.
<관계>- 동양
동양건축은
기둥 사이로 창문이 크게 자리한 탓에
안에서 밖을 보기에 용이했다.
자연스래 조상들은
밖에서 보는 집의 모습보다
안에서 보이는 밖의 모습에 집중하게되었다.
커다란 창문에 걸터앉은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을 안으로 끌어오기위해 집안에 분재를 두고, 벽엔 산수화를 두었다. 밖에 보이는 풍경을 안으로 끌어와 자신의 공간과 연결지어 생각하려 노력했다 .
나와 자연의 관계
나와 마을의 관계
나와 사람들의 관계.들을 연결하여 생각했다.
음양오행. 조선시대 사람들은 세상 만물이 연결되어 관계를 갖는다고 믿었다.
간명하게 뽑아내자면 동양의 집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은 주변 집단에 조화롭게 섞이어 녹아드는 것을 선호한다.
마을 사람들과도 잘 지내려 노력하고
자연과 자신의 공간의 관계성도 중시했다.
이러한 우리의 가치관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나의 행동을 하기 전에 다른 이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동양의 집은
관계에 민감하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주거문화의 차이로 보았을때, 서양의경우 개성과 본인의 권리, 자율성을 중시하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협력과 조화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현대의 창 - 스마트폰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철근 심이 땅에 박히고
콘크리트 집이 들어섰다.
동양의 창도 작아졌다.
부유한 사람들만이 창을 갖고
커다란 통창을 둔집에서 살아간다.
(출처 경향신문. 창문없는 고시원 더 이상 못짓는다)
창이작아진 대신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창을 얻었다.
그것만 있다면 세상 어디와도 관계를 맺고 연결지을 수 있다.
이제 강수량은 주거모습에 영향을 주기 어려웠다.
생활방식도 섞여가고있다.
한옥에서 살던 때와 달리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이들은 점점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고 나선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또한 그렇다. 관계만을 중시하다보면 나 자신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그 두가지 가치는 좋은 균형을 이루어야하고 지금 우리는 그 과정중에 있다.
밖을 들인다는건
휴대폰이라는 창이 있음에도 우리가 창문을 열어야하는 이유는
전자책이 있음에도 종이책을 넘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누구나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상쾌한 편안함을 누려본적이 있을것이다.
자연은 휴대폰의 한계다.
휴대폰은 관계를 짓고 볼수도 있지만 창일뿐이다.
드나드는 문이 될 순 없다.
아무리 거대한 스크린일지라도 자연을 들일 순 없다.
내 방 창문을 보았다.
안막커튼과 브라인드는 몇 주째 걷어내지 않았고.
겨울엔 환기조차 잘 시키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는 글을 쓰며 커튼을 젖히고 브라인드를 걷어냈다.
자연이 들어오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밖을 안으로 들이는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다.
가끔은 나무기둥 사이에 앉아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이유이기도하다.
ps. 서양과 동양의 생활방식차이를 설명하기위해 둘을 구분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나 지역도 있을 수 있다. 이분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참고
경향신문 세상읽기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
유현준교수님, 셜록현준 동서양 건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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