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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당/전통 체험 & 문화행사

섬진강의 어원과 지명유래담

초연당웹지기 2023. 10. 6. 00:37
황매실원액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공휴일로 지정되어 더 반가운 한글날입니다. ^^ 
우리는 얼마나 우리말을 잘 알고 쓰고 있을까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방송과 언론에서도 신조어가 남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상에서 쓰는 줄임말은 심각성을 넘어 대화에 불편함까지 초래합니다. 청소년들은 줄임말을 쓰는 이유가 '짧게 말하고 쓰는 것이 편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갑톡튀','넘사벽','듣보잡','갑분싸','남사친','여사친','이생망'.......나열된 줄임말 중 몇 개나 의미를 아시나요? 빠름을 외치는 이런 시대를 사는 바쁜 현대인에게 어쩌면 줄임말은 당연한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언어는 시간에 따라 변해 왔습니다. 중세국어가 수많은 역사적인 시대적 배경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말로 변화되었지요.  거꾸로 생각해 볼까요? 지금의 우리말들에도 유래가 있지 않을까요?  말과 단어의 뜻이나 꼴이 변화된 원인이나 역사적 유래를 언어학적으로 어원이라 말합니다. 어원을 밝히는 일은 역사의 흐름과 사회변천과 밀접한 연관성을 밝히는 일이므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원의 해석은 지금 쓰고 있는 어휘나 지명들이 어떻게 생겨 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시대상까지 알 수 있습니다.
 

어원!
'말'들의 히스토리
'근본 없는' 낱말은 없다!
-국어학자 조항범교수-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관 소장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어원을 아시나요?
'서울', 강원도의 '철원', '신촌'이 본래 같은 뜻을 갖고 있는 땅 이름이었다면?
서울은 신라의 수도 '서라벌' 또는 '서벌'에서 나온 말입니다. 서라벌(徐羅伐) 또는 서벌(徐伐)은 '새벌', 곧 '새로운 마을(벌판)을 뜻하는 우리말을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바꿔 쓴 것입니다. 철원은 고구려 시대에 철원으로 부르기 전 '새벌'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자로 표기할 때 '새롭다'의 뜻의 '새~"를 '쇠[鐵'쇠철])라는 뜻으로 받아씀으로써 '철원(鐵圓)'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라 합니다. '신촌'은 옛날 어떤 마을이 새로 생기면서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그냥 '새말(새마을)', '새벌'로 불렀다가 한자로 바꿔 부르면서 뜻 그대로 '신촌(新村)'이 되었습니다. 모두 '새로운 마을'을 의미하는 같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같은 꼴, 같은 뜻으로 출발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천하여 전혀 관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원을 찾아 나서는 길은 먼 우리 옛말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네요. 

 
어원 중에 저는 지명유래가 전설에 얽혀 있어 더 재밌는 듯합니다.

지명유래는 전부터 내려오는 지명의 전승 내력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이 지명유래는 전설로 통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작은 땅에 처음으로 정착할 당시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삶의 영역이 차츰 넓어감에 따라 여러 지형, 지물의 차이와 닮음의 구분이 차츰 필요해져 하나 둘 명명하던 곳곳의 이름이 마을과 국가의 흥망에 따라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되었을 것입니다. 땅의 이름에는 그 땅을 사는 사람들의 집단적 세계관이 담겨 있습니다. 

땅에 얽혀 있는 전설은 구비문학으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게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누구의 말이 옳고 누구는 엉터리 해석을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편타당한 논리적 결론을 내기 어려운 점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될 수 있으므로 이 글을 읽은 사람의 판단에 맡겨보려 합니다.
 

섬진강 발원지 /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섬진강(蟾津江) 지명유래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재첩의 강 섬진강에 대해 유래를 찾아보았습니다.
섬진강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여러 험준한 산악들 사이를 굽어 흘러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강입니다. 험한 산지를 따라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하구에 이르면 경사가 완만하여 습지가 잘 발달된 경관이 매우 수려한 강입니다. 수질이 5대 강 중 가장 깨끗한 강입니다.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이며, 신라와 백제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에는 왜군의 침입경로가 되었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농민항쟁 동학농민전투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섬진강은 전라남도 광양군과 경상남도 하동군 사이의 도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두꺼비 섬蟾' 한자를 씁니다.  223km 호남 지방의 옥토를 가꾸는 젖줄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 자락 옥녀봉 아래 '데미샘'이 발원지입니다. 
섬진강은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이야기]

섬진강 어원 '두꺼비 나루'

섬진강의 옛이름은 '모래내', '다사강', '두치강'이었다. 모래사장이 넓게 발달해 불린 이름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하구에 쳐들어 와 이 강의 나루터에 도착하자 나루터 일대에 수많은 무리의 두꺼비가 새까맣게 몰려들어 한꺼번에 울부짖었다. 이 때문에 왜구들은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고 광양쪽으로 피해갔다. 이 때부터 강 이름을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자를 붙인 섬진강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는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지만 이름으로 나름 짐작해 본다면 이 섬진강 일대에 두꺼비가 많이 살았다고 보아야 하나? 흠.... 전설만으로 지명을 해석하는 것은 뭔가 억측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광양 다압면 섬진마을에 가면 섬진강 유래비와 두꺼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옛 이름 단군시대에는 '모래내', 백제시대에는 '다사강', 고려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린 것으로 보아 섬진강은 예전부터 모래가 많은 강이었을 거예요. 지금도 역시 해수욕장처럼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강입니다.

모래가 많은 섬진강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섬진강의 또 다른 옛 이름 '달래강'

'섬蟾'은 두꺼비 의미만이 아닌 '달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늘에 있는 달을 섬궁(蟾宮)이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달에 두꺼비가 살고 있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섬토라는 말은 두꺼비와 토끼를 말하는데 이 역시 달을 달리 부르는 말로 쓰입니다. 달나라에는 금두꺼비와 옥토끼가 살고 있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입니다. 섬광(蟾光)은 두꺼비의 빛이라는 뜻으로 달빛을 달리 이르는 말입니다. 월광과 같은 의미입니다.
두꺼비는 겨울이면 사라졌다 봄에 나타납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두꺼비를 부활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했고 달도 1개월 주기로 작아졌다 커지는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 이 둘의 같은 특성으로 두꺼비를 달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기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토끼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는 동물입니다.(토끼는 수컷 없이도 달을 보면 새끼가 생겨 입으로 토해 낼 수 있었다는 설화).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면 해에는 까마귀가 두꺼비와 토끼가 달에 함께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예로부터 달 속에 두꺼비가 살고 있다는 신화에서 비롯되어 섬蟾을 때로는 '달'로 읽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섬진강을 '달래강'으로 불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다시 말해 '섬진'은 '달'과 '나루'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이 달을 '월月' 대신 '섬蟾'자로 대신한 것입니다. 또한 하늘의 달(月)과 산골을 뜻하는 '달'은 발음이 흡사합니다. 대개 산골 계곡을 흐르는 강을 '달래강'으로 불렀습니다. 충주의 달천 또는 달래강을 비롯해 같은 지명의 달래강은 우리나라에 30여 곳이나 산재해 있습니다. 섬진강이 지리산 계곡을 감싸며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달'이라는 말을 표기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달래강'이 별칭처럼 느껴지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달'계열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봅니다.
'달'이 서두에 쓰이면 산, 높고 큰을 의미로 대개는 쓰였다고 봅니다. 옛 기록으로도 알 수 있듯이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전적으로 높다는 의미로 '달'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말하곤 합니다. 높고 큰 산을 끼고 흐르는 강이라 '달'을 붙여 달래강으로 불렀을 거라 추측합니다.
'달래 '의 '래'는 '달'의 두 글자 표기로 끝소리가 'ㄹ'이 따라붙은 것으로 보고 '래'는 별다른 뜻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달래강 전승 하천에서 실제로 달천, 달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아 달의 2음절 표기로 추측해 보아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해석입니다. 

‘섬진(蟾津)’은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조선시대 군사상 요충지라고 하여 별장(別將)이 상주하는 ‘섬진(蟾鎭)’을 두었는데 이것이 강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잔수진(潺水津), 순자강(鶉子江), 압록진(鴨綠津)은 모두 조선시대에 남원·구례·곡성지방에서 부르던 강의 별칭이다. 적성강이라고도 불렀으며, 이 강의 모래가 곱고 아름다워서 모래가람, 모래내, 사천(沙川), 다사강(多沙江)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칭으로는 두치강이 있다.

달래강은 전라북도 진안지방에서 부르던 이름으로 보고 있는데, ‘산골(진안고원)을 흐르는 내’로 풀이하고 있다. 1458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에는 광양 다사강, 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섬진 : 남원부 잔수진이 남쪽으로 흘러 진주 화개현에 이르러 서쪽으로는 용왕연이 되는데 그 동쪽언덕이 진주 악양현 경계이다. 동남쪽은 바다로 들어갔는데 고려 때에 이 물이 거슬러 흐르는 3대강이다 했다’고 하였다.「연려실기술」 지리전 고현에는 ‘섬진강의 근원은 진안의 중대 마이산에서 나와서 합하여 임실의 오원천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운암 가단을 지나서 태인의 운주산 물과 합하여 순창의 적성진이 되는데 이것을 화연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저탄이 되며 또 동쪽으로 흘러 남원의 연탄이 되며 또 순라진이 된다. 다시 옥과에 이르러 방제천이 되며 곡성에 흘러가 압록진이 되고 구례에 이르러 잔수진과 합하였다. 잔수진은 순자강과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개 서쪽 경계에 이르러 용왕연이 되는데 여기는 조수가 들어오는 곳이다. 또 광양 남쪽 60리에 이르러 섬진강이 되는데 그 동쪽 언덕은 곧 하동의 악양으로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 때는 이 물이 배류 3대 강의 하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진시황이 서복이라는 자를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하였는데 섬진강 최상류 하천인 서시천을 거슬러 지리산에 들었으나 구하지 못하고 탐라(제주)로 갔다고 전한다.

[출처 : 한국하천협회 강이야기 하천지명 유래 이야기 4 - 정해옥]

 

섬진강 /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섬진강의 또 다른 옛 이름 '두치강'

두치강(豆治江)이라는 이름 역시 '두치豆治'도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머리재', '높은 고개'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머리 두(頭)' 대신 '콩 두(豆)'가 쓰였고, 고개 치(峙) 대신 발음이 같은 '다스릴 치(治)' 또는 '둘 치()'를 쓴 것은, 이 강이 지리산의 높은 산을 끼고 흘러 내려오는 것으로 '머리재강'이라 불리다가 한자로 바꾸면서 두치강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두치강은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서쪽의 섬진강을 이르는 말입니다. 전남 광양으로 통하는 나루를 두치나루라 하였습니다.

『대동여지도』(19첩 3면) 두치강(두치진) 일대

 
두치나루에는 역시 재미있는 전설이 얽혀 있습니다.

[두 번째이야기]

섬진강 어원 '두치나루터'

옛날, 이 강 하류에 두치진(豆恥津) 나루터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았다. 어느 날 처녀가 저녁밥을 짓고 있는데, 큰 두꺼비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와서는 큰 눈자위를 끔벅이며 쳐다보자 처녀는 두꺼비에게 밥을 주고 집을 지어주었다. 처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3년의 세월이 지났고, 어느 여름날 밤, 처녀가 자고 있는데 섬진강 상류에 홍수가 터져 사람이나 가축은 물론이고 집까지 성난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처녀도 같이 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는데 그동안 처녀가 기른 두꺼비가 나타나 있는 힘을 다해 처녀를 강기슭에 올려다 놓고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에 처녀는 강기슭 동산에 두꺼비를 장사지내고 매년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 처녀가 두꺼비를 타고 도착한 곳을 두꺼비 나루(蟾津)라고 부르고 이때부터 두꺼비 ‘蟾(섬)’ 자와 나루 ‘진(津)’ 자가 붙어 지금의 ‘섬진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치진나루 (문화원형백과 나루와 주막, 2007.,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실제로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사동마을의 섬진강에는 혹 5m가량 되는 두꺼비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홍수가 나면 이 바위가 물속에 잠기지만 강물이 정상으로 흐를 때에는 마치 두꺼비가 헤엄쳐 가는 형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이 마을이 부유해지려면 이 두꺼비 바위가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풍수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전국에는 같은 의미를 가진 어휘의 지명, 산이름, 하천명등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추측으로 누구의 의견과 해석이 옮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읽는 사람 편에서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강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땅이야기 최재용 지음

 
한글날도 다가오고 하여 오늘은 어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서관에서 우리 땅이야기를 대출해 읽고 있다 공감 가는 내용이 있어 아래에 공유해 봅니다.

한글은 우리의 뜻을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더없이 소중한 문화자산

무조건 한글로 썼다고 우리말, 우리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끼리도 우리말, 우리글이 통하지 않는 시대
단순히 귀에 들리는 소리만을 적는 표기 수단으로 굴러 떨어지게 될지 모른다.

《역사와 어원으로 찾아가는 우리 땅이야기》 서문 중

"굳이 문학적 수사가 필요치 않고,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가장 중점을 둬야 할 여러 글과 자료들이 갈수록 불필요한 외국어나 억지스러운 신조어, 또는 문법적 질서를 장난하듯 깨뜨리는 표현이나 끼리끼리만 통하는 단어로 가득 채워져 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우리 땅이야기 저자 최재용 님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