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후는 참 변화무상합니다.
여름에서 가을즈음 해년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몇 개의 태풍이 반갑지 않네요.
느림보 6호 태풍 '카눈'이 천천히 우리나라를 간통하면서 흔적을 너무도 크게 남겼습니다. 장마로 인한 수해 피해가 미쳐 수습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겪은 재난이라 피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기후를 살펴보면 뚜렷한 4계절이 있는 삶은 분명 축복이지요. 사계절이 주는 자연조건의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적 혜택은 정말 많습니다. 시시각각 변화는 계절의 경험은 우리에게 감수성이 풍부한 윤택한 삶을 줍니다.
하지만 불리한 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요. 여름에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으로 무덥고 습한 여름을 보내야 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와 몽골 고원에서 불어오는 한냉 한 시베리아 기단으로 건조한 한파에 시달리지요.
연교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 맞추기는 더욱 힘듭니다. 의식주 모두가 양 극단의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계절의 혹독함을 이겨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시각각 변화되는 기후에 순응하고 자연을 활용하여 적응하며 사는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햇빛과 바람의 과학
우리 조상들은 혹독한 계절의 변화를 이겨 내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지혜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 전통 음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발효식품이 그러하며 채소절임, 말린 나물, 계절에 따른 요리법 등 양극단의 기후를 자연스럽게 이겨내는 지혜가 보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겠지만 한옥이야 말로 변화무상하는 기후 요소의 직접적인 지혜의 산물입니다. 집이야 말로 의식주의 가운데에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한옥이 지혜롭고 과학적인 것일까요?
기후 요소는 햇빛과바람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은 피하고 시원한 바람이 해답이며 겨울에는 추운 바람은 피하며 따뜻한 햇빛이 답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 한옥은 이러한 해답을 가진 구조로 설계된 집입니다.
또한 '배산임수' 풍수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이 말은 집이나 마을 주위로 산이 둘러쌓여 겨울철에는 산이 그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철에는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나 들판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집이나 마을로 받아들이기 좋은 조건을 갖춘 터를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을 내려다보는 지세를 갖춘 터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취해 온 매우 구체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집을 살펴 볼까요? 한옥은 정말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입니다. 햇빛이 드는 각도 조절이 명확하며 바람 길을 과학적으로 냅니다. 여름에는 바람을 붙잡고 깊숙이 끌어들이고 겨울에는 햇빛을 방구석구석까지 들입니다. 기후 요소의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구조입니다. 한옥은 양극 기후를 모두 만족하는 이상적인 주거 구조인 셈입니다.
한옥은 친자연적입니다.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하여 기계적 힘을 빌어 기후를 이겨내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을 토대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여 설계된 주거 구조입니다.
임석재 교수는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에서 한옥의 과학다움의 첫 번째를 햇빛 과학을 들고 있습니다. 한옥의 햇빛은 지붕 처마의 길이와 창과 방의크기로 조절합니다. 오늘은 햇빛과학 원리 첫 번째로 지붕의 처마에 대하여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창과 방의 크기는 다음에 포스팅하오니 그때를 기대해 주세요. ^^
지붕 처마의 돌출
한옥은 한겨울 따뜻한 햇볕이 절실할 때에 신기하게도 대청과 방 안 깊숙이 따사로운 햇볕이 파고듭니다. 한겨울에도 햇빛이 넘처 나니 집 안은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여름은 어떨까요? 당연히 햇빛은 피하고 싶은 존재지요. 여름에는 신기하게도 대청과 방안 끄뜨머리까지만 해가 들고 방 안쪽은 시원한 그늘이 집니다.
일조량을 적절히 조절하는 힘이야 말로 한옥의 결정적인 지혜입니다.
그 비밀의 원리를 알아 볼까요?
지구의 계절은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3.5도 자전축으로 기울져 도는 지구는 적도를 기준으로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뉩니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면서 태양열을 받는 양과 거리 변화로 계절이 나타납니다.
북반구 중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해는 여름에는 높이 뜨고 겨울에는 낮게 뜹니다. 태양의 고도가 높으면 햇빛이 비추는 시간이 길어지고 여름이 되는 것이며, 고도가 낮아지면 햇빛이 비추는 시간이 줄면서 겨울이 됩니다.
우리나라가 하지 때 태양의 각도는 76도이고 동지 때에는 29도입니다. 그럼 땅 위에 있는 집을 기준으로 이야기해 볼까요? 여름에는 햇빛이 거의 수직에 가깝게 내리비추고 겨울에는 낮은 각도로 완만하게 비칩니다.
도시 속의 빌딩은 매우 불리할 수 있습니다. 여름 해가 수직으로 내리 비추기 때문에 빌딩이 그늘을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한여름 빌딩숲에서는 그늘을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찾더라도 그 폭이 야박하리 만큼 좁습니다. 겨울은 어떨까요 높은 빌딩은 완만한 각도의 햇빛을 받아 빌딩 뒤쪽이 온통 그늘로 뒤덮입니다. 한겨울 도심 빌딩 숲에는 양지바른 곳을 찾기 어려우니 눈이 내려도 잘 녹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옥은 이런 현상을 매우 지혜롭게 활용하였습니다.
창과 지붕과 방의 크기와 위치를 적절히 활용하여 햇빛을 잘 조절하였습니다.
지붕의 돌출 길이
지붕 처마를 여름 태양과 겨울 태양의 각도 사이에 위치하게 돌출 시켰습니다. 여름 태양을 막아 튕겨내고 겨울 햇빛은 들어오게 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37.5도 지역에서는 동지와 하지의 태양 각도가 76도와 29도 사이에 지붕 처마가 위치하게 돌출시키면 햇빛 조절이 가능하게 되는 원리입니다. 봄과 가을에는 계절과 기온에 맞게 해 길이가 자동으로 조절됩니다. 겨울에는 태양의 고도가 낮아 완만하게 빛이 비치니 방 깊숙이 들고 여름에는 태양이 방안까지 들지 않고 끄트머리에 살짝 걸치다 서산으로 집니다.
두 각도 사이를 유동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지붕의 처마 길이가 길어집니다. 우리 전통 한옥의 지붕 길이가 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길게 돌출한 지붕은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 중 하나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란 말이 있을 만큼 기와지붕이 웅장하고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3대가 사는 규모가 제법 있는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이웃집 친구네가 현대식 주택으로 개조할 때 무척 부러워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친구는 여름방학만 되면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 살다시피 하는겁니다. 아침 밥만 자기 집에서 먹고 우리집으로 냅다 달려와 하루 종일 마루바닥에 등을 대고 누어서 지냈을 정도였지요. 우리집 대청마루가 시원하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저녁밥까지 야무지게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얄미울 때도 있었지만 같이 방학숙제도 하고 봉숭아 물도 함께 들이며 나름 방학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려 그때를 추억하니 얄미웠던 친구가 그립기만 합니다.
뭣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에는 어린 마음에 한옥이란 불편하고 촌스러운 집으로만 여겨졌지요. ㅎㅎ 지금은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삶은 편해졌지만 왠지 그 시절의 집이 그립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계셨던 웅장한 기와지붕 처마 아래 드리운 넓은 그늘이 눈물 나도록 그립습니다. 한여름 흙마당에 소낙비라도 쏟아지면 뜨겁게 달구어진 흙이 식는 냄새가 참 좋았습니다. 오후에 어머니께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랑 감자를 쩌 내오시면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로 오후 시간을 보내던 소박한 한옥집 생활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옛 친구가 보고 싶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초연당의 대청마루를 찾습니다. ^^
우리 초연당 청산백운실의 대청마루는 보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높은 천장과 앞뒤 분합문을 모두 걸어 올리면 앞뒤가 뻥 뚫려 바람이 통으로 잘 통합니다. 이 대청마루에 대자로 양팔다리를 벌리고 누어 오수를 즐기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신선이 된듯 합니다. ㅋㅋ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며 한옥의 과학을 하나씩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붕이 커다란 이유가 단지 멋스러움만은 아니었네요. 맨날 보는 기와지붕이 미학뿐 아니라 이런 숨은 지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지붕의 길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다음에 창과 방의 크기에 대한 포스팅을 마저 이어 하겠습니다.
'초연당 > 전통 체험 & 문화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진강의 어원과 지명유래담 (1) | 2023.10.06 |
---|---|
선조들의 생활 회화 민화 (3) | 2023.08.29 |
한옥 햇빛의 미학 창호지 (1) | 2023.07.28 |
봄 꽃이 지고 새 순(筍)이 돋다 (0) | 2023.04.12 |
초연당 자주목련이 피다 (0) | 202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