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찾아왔음을 실감하는 한 주입니다.
동장군이 제대로 찾아왔나 봅니다. 찬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얼음이 탱탱 얼었네요. 돌학독에도 겨울 차비를 마친 연근이 잠들어 있는 대아에도 고인 물이 얼어붙었습니다.
앙상한 고목나무 꼭대기에 살고 있는 까치 부부는 오늘도 금실이 참 좋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저 높은 꼭대기 까치집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입니다.
구들방 옆 굴뚝은 이제야 제 쓰임새를 하고 있습니다. 하얀 연기가 푸른 하늘 위로 피어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선녀의 흰 옷자락처럼 아련하게 여겨집니다.
굴뚝의 연기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주저 없이 소환해 옵니다.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숨바꼭질과 고무줄놀이를 하다 해가 지고 노을이 붉고 타오를 즈음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곧 너나없이 엄마들의 '밥 먹어'라는 정겨운 부름을 들으면 하나둘씩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금세 시끌벅적하던 골목길은 텅 비어 스산한 바람만이 불고 지나 가지요.
대문을 들어서면 외양간 옆 아궁이에는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립니다.
타닥타닥....
아버지께서 가마솥에 고구마랑 짚, 물을 잘 섞어 쇠죽을 끓이려고 장작을 지펴 놓으셨을 테지요. 외양간의 누런 어미 황소와 송아지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쇠죽을 바가지로 퍽퍽 퍼다 쇠죽 통에 부어 주면 고개를 처박고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맛난 저녁식사를 합니다. 부엌에서는 뜸 들이고 있는 구수한 밥 냄새가 솔솔 풍겨 오고, 저는 군불 당번이라 작은방 아궁이 솥에 물을 한 솥 가득 부어 군불을 지핍니다. 지금이야 수도꼭지만 틀면 찬물 더운물이 콸콸 나오지만 옛날 그 시절 겨울에는 이렇게 군불을 때서 물을 데워 씻었지요.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처럼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는 추억의 풍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는 노을이 물드는 저녁에 굴뚝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빛바랜 추억의 풍경입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태양의 시간이 짧아집니다. 하늘을 태울 것 같던 붉은 노을이 가라앉고 나니 어둑한 밤이 찾아옵니다. 해거름참을 구경하다 보니 회색빛 땅거미에 젖어들고 있는 줄도 몰랐네요.
군데군데 가로등이 어두워지는 마당을 밝혀주니 새삼 6시가 꽤 늦은 저녁시간처럼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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