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지 일주일이 훌쩍 넘었네요.
늘 수능이 돌아오는 시즌에는 한파를 몰고 오는데 올해 수능은 한파 없이 무사히 치러 다행입니다.
필자의 첫째 자녀도 올해 수능을 치뤘습니다. 수능시험 일주일 전부터 잠을 설치던 퀭한 모습과 청심환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는 딸의 초췌한 얼굴이 엄마의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습니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입시 준비가 거의 끝나는 분위기지만 필자의 자녀처럼 예체능이나 논술, 인적성평가가 남아 있는 수험생들은 여전히 지금 시간에도 수험 준비 중입니다. 미대 정시를 준비하고 있는 딸아이는 오늘도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파이널 한 달! 수능으로 피폐해진 신체와 정신줄을 다시 동여 매고 피로와 죽을힘을 다해 싸우며 목표의 끈을 놓지 않는 딸아이의 강한 집념을 보면서 새삼 인간의 강인함을 느낍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로 수험생들의 노력을 강요하고 인내를 채찍질하는 사회입니다. 영혼을 갈아 받쳐가며 올인한 3년의 인고의 시간을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눠 간단하게 판단을 해 버리는 허탈한 상황이 수험생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인내의 순간들도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노력의 과정은 순간의 결과로 과정을 대변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에 따라 노력의 양과 질이 저울질 됩니다.
그러나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포기는 패배자나 낙오자로 낙인이 찍힐테니까요. 어쩌면 항상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기대가 아이들을 앞만 보고 달리고 누군가를 밟고 넘어 서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실기 입시 준비로 늦은 귀가를 하는 아이의 흔들리는 어깨를 보며 학부모로서 아려 오는 마음을 넋두리처럼 풀어 보았습니다.
얼마 전 우리 초연당 정원에 꽃봉오리를 머금은 운용매가 있어 사진을 올려봅니다. 가을은 점점 멀어져 가고 초겨울의 문턱에 웬 매화꽃 봉오리냐고요? 22일 소설이 지나 눈발이 날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기에 철 모르고 머금은 매화꽃이 신기합니다. 아마 요새 날씨가 따뜻하여 계절감을 상실한 듯합니다. 드물지만 가을에 개나리 꽃을 볼 때도 있었고 한겨울에 붉은 장미꽃 위로 흰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참 철없는 꽃이라고 웃으며 넘겼지요. ㅋㅋ
우리 초연당에도 이 철 없는 꽃이 있었네요.
요즘 딸아이가 미술 실기 수험 중인데 포트폴리오 과제 중 '9와 10'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주제를 받아왔습니다. 딸아이의 해석이 기가 막혀서 블로그에 언급을 해 봅니다.
'9는 봉오리진 꽃이 서서히 피오나며 만발하기 전의 상태로 수험생의 인고의 시간, 딱 지금의 자신의 수험생 처지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9는 10으로 가득 채워지기 전의 1이 부족한 수로, 기필코 10이 되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만발한 꽃을 피우기 위해 고진 인내로 감내한 9의 외롭고 처절한 싸움의 시간을 가장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은 만발한 10이 아니고 9의 순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매화꽃을 그렸더군요.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부네요. 섬큼 겨울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이번엔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 봅니다. 격동의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연약 하지만 강인한 꽃, 설중매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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