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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당/보도자료 및 리뷰

제사 상차림의 정신과 예법

초연당웹지기 2024. 2. 5. 23:54
황매실원액

 

곧 설날 연휴가 시작되는군요. 모두들 고향에 갈 차비는 다 하셨는지요? 올해 설연휴는 나흘이라 일주의 반 이상입니다. 긴 연휴기간 여행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요. 저도 부모님 뵙고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올리고 오렵니다.
설날이나 추석하면 의례상을 차리게 되는데요. 이런 제사상차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한식 관련 책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2018년 세종도서 우수학술도서선정 , 한식의 도를 담다 오이즈북출판

도서관에서 '오천년의 밥상 위대한 문화유산 우리 한식이야기 『한식의 도道를 담다』' 김상보 저자의 책을 빌려와 읽어 보았습니다. 1부 한식의 뿌리를 찾아서 챕터에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제사상차림의 정신 부분을 읽고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죽음은 곧 재생, 길례로서의 제사

 
음식과 제의는 식문화사적으로 볼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군주가 바뀔지라도 제의 의식은 곧 국가의 중대한 예로서 왕실은 도을 다하였습니다. 사대부와 서민 또한 제례는 1년 내내 평안과 축수, 생업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큰 행사로서 제례음식은 우리 선조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연관 속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출처 : 농축유통신문- 제사상 앞에서 술을 올리고 있는 모습

 
우리 선조들에게 제사는 즐거운 의례인 길례에 속했습니다.  제삿날 올릴 술을 큰 항아리에 빚어 제삿날 조상님께 올리고 한 가족이 모여 제사가 끝나면 이 한(大) 항아리의 술을 나누어 음복하였습니다.

신과 함께 술을 나누어 마시는 행위는
조상신과 자손 사이의 뜻이 오고가
조상신이 자손에게 베푸니
조상신이 돕는 것이고,

조상신의 뜻하는 바를 자손들이 따르니
조상신을 돕는 것이다.

 
천도(天道)가 가득한 술을 신과 자손들이 함께 마시는 것이 바로 음복이라고 김상보 님은 쓰고 있습니다. 한 항아리의 술을 조상신과 자손이 함께 마시는 술이며, 곧 가족의 결속을 다지는 행위입니다. 특히 조선왕조가 유교를 표방한 제례라는 예를 통하여, 가정, 사회, 국가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결속을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역』 게사상편 제 4장에는

이 與天地準이라 로 能彌綸天地之道하나니,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라.
是故로 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로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오 游魂爲變이라,
是故로 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

역이 천지와 더불어 기준하니라그러므로 능히 천지의 도를 두루 짰으니우러러서 하늘의 무늬를 보고구부려서 땅의 이치를 살피는지라이런 까닭으로 그윽하고 밝음의 연고를 알며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마침으로 돌아가는지라그러므로 죽고 삶의 말을 알며정미한 기운이 물건이 되고떠도는 혼이 변함이 되는지라이런 까닭으로 귀신의 정상을 아느니라.

역(易)은 음과 양의 변화인데 어두움(음)과 밝음(양), 생과 사, 귀와 신은 모두 음양의 변화로써 이것은 하늘과 땅의 도입니다. 천문에는 음과 양인 밤과 낮, 그리고 하(下)와 상(上)이 있고, 지리에도 음과 양인 북과 남, 그리고 깊음과 높음이 있습니다. 음과 양의 이치를 안다면 당연히 산 세계와 죽은 세계의 연고를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남을 근원으로 하여 죽음을 돌이켜 알 수 있는 음과 양의 순환 이치가 생과 사입니다. 인간 세계의 생과 사란 죽고 사는 기쁨을 아는 것이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원리에 죽음도 곧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필자의 말에 의하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만물체는 음의 정(精)과 양의 기(氣)가 합하여 양신(陽神)인 신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죽음에서 생기는 혼(魂)은 기와 같은 양(陽)이므로 하늘로 올라가 양신인 신이 되고, 백(魄)은 정(精)으로 음이므로 땅으로 내려와 흩어져 음신인 귀로 돌아가는데 이 혼백이 흩어져 변화지도를 이룬다 하였습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원리에 따라 제례는 분명히 길례입니다. 신은 만물체를 창조하였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물은 신의 창조물입니다. 은나라 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시가 311편을 엮은 공자의 『시경』에 이런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추석 차례상 출처 : 한국강사신문

 
 

가가례家家禮로 발달한 한국의 제사 예법


제사 예법 기원은 기원 전후 1세기경에 만들어진 『예기禮記』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13세기 주자(朱子, 1130~1200)의 『가례家禮』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의 제사 전통은 유교식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과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습니다. 선조들은 중국식을 조선식으로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결과 ''예학禮學''을 탄생시키고, 200여 종이나 되는 예서禮書를 발간하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의례 해석에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이것이 ''가가례家家禮''로 발전하였습니다.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라는 속담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요즘 같은 제사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부부 제사를 1회로 합하거나, 명절에 모든 조상들을 모아서 지내는 형태의 제사, 곧 직계 혈족에 대한 제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400년께인 은나라 시절, 조갑이라는 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형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면서부터입니다. 갑골문 기록을 살펴보면 이전까지만 해도 은나라는 황하신·천신을 포함해 천지만물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조갑은 이들 제사를 모두 폐하고 조상신 하나만을 숭배 대상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조상의 족보도 수정했습니다. 이는 곧 자기 조상이야말로 모든 토템과 샤머니즘적인 숭배 대상을 초월한 강력한 존재임을 주변 부족에게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 유교 문화 특유의 족보 만들기·족보 캐기·씨족 혈통 우월 의식  등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출처 : adobe stock 체험판 - 차례를 지내는 가정

한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조상의 조(祖)라는 글씨는 제단을 상형화한 시(示)와 남성 성기를 상형화한 차(且)가 합쳐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남성 우월의 가부장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전반부터 형성된 개념으로, 이 같은 발생론적인 이유로 여성은 제례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는 남성이 사회의 모든 가치와 권력을 계승해 가고 있다는 그들만의 은밀한 축제였습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중에서. 김경일 저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민간신앙을 일소할 방법을 주자학에서 찾았습니다. 제천(祭天)과 제사(祭祀)가 그것인데,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하늘신과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좌측에 종묘를 지어 제사의 기원을 마련했습니다. 15세기말 성종은 『경국대전』을 편찬해 국법으로 반포했습니다. 예제(禮制)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6품 이상 문관이나 무관은 3대까지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대까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 지낸다.’ 잡신을 섬기는 자는 처벌되었습니다. 빈곤한 서민은 위패를 모시고, 명절 땐 두어 가지 음식으로 족했습니다. 굶는 판에 더 차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양반이 향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봉제사는 충군효친의 규율 수단이 되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격식과 요란한 상차림이 강제됐습니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 간편 제수 용품

 
아래는 문화재청에서 알아본 한국의 제사에 대한 예법입니다.


과일은 홀수가 아니라 짝수로 차려야

가장 민감한 것은 역시 음식 중에서도 과일과 관련된 숫자입니다. "과일은 홀수로 써야 한다"는 관념이 그것입니다. 과일 접시 수가 홀수로 표시된 것은 율곡(栗谷, 1536~1584) 선생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뿐입니다. 이 외에는 과일을 홀수로 쓰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의 각주에 의하면 진 씨陳氏가 말하기를 "정鼎과 조俎에 담는 것은 하늘에서 나는 것을 주로 하는데 하늘에서 나는 것은 양陽에 속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홀수로 하고, 변과 두豆에 담는 것은 땅에서 나는 것을 주로 하는데 땅에서 나는 것은 음陰에 속하기 때문에 그 숫자를 짝수로 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변과 두에 담는 제물이 바로 과일류입니다. 또한 『가례』나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접하기 쉬운 예서들에 의하면 과일은 6그릇을 쓰는데, 없으면 4그릇이나 2그릇을 쓴다고 하여 짝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근거해 볼 때 생선과 고기는 홀수로 쓰는 것이 옳고 과실과 소채는 짝수로 쓰는 것이 옳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제상 진설에 음양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한민족의 홀수 선호가 과일도 홀수로 차리게 해

과일은 홀수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범람하는 것은 한민족의 ''홀수(기수, 奇數) 선호 관념''이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삼세번'', ''삼''을 선호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이를 모든 생활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예서를 충실히 연구하지 않고 관념적으로만 해석한 결과 과일의 수 역시 홀수로 규정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접시에 올리는 과일의 수를 홀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만약 이 원리를 따른다면 과일의 핵심인 대추나 밤을 어떻게 홀수로 세어서 차릴 수 있을까요?
 

과일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는 금물

제사에 차리는 과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기 때문에 임금을 상징하고, 밤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어 있으므로 삼정승을 상징하며, 감은 씨가 여섯 개이므로 육판서를, 그리고 배는 씨가 8개이므로 팔도관찰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 네 가지 과일을 쓴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이러한 설명을 한 곳은 없습니다. 즉,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니 과일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는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래 제사는 벽장에 있는 음식으로 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일은 사계절 보관할 수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대추는 생대추와 말린 대추, 밤은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서 보관하고, 감은 홍시와 곶감으로 사시사철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삼실과三實果가 제사음식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과일이 된 것입니다.
 

생선의 머리는 서쪽으로 두어야 신도에 합당

제물을 진설할 때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할 것인가 서쪽으로 할 것인가? 상당수의 민속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 두동미서頭東尾西의 원칙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사상에 음식을 진설할 때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하라는 예서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례원류家禮源流』에도 나와 있듯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밥상에는 생선의 머리를 동쪽으로 두도록 하고 있으나 제사상에서 생선의 머리는 서쪽으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동미서의 원인은 아마도 산 사람의 밥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생선의 배는 신위神位 쪽으로 가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생선의 배에 기가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상 진설의 방위는 신위를 중심으로 해야 혼란이 없어

생선의 머리를 서쪽으로 하는 것은 음양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인도人道로서 동쪽(왼쪽)을 상위로 하고, 돌아가신 분은 신도神道로서 서쪽(오른쪽)을 상위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에서 규정되는 이서위상以西爲上의 근거가 됩니다. 또한 의례를 행할 때 좌우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가례』에서는 실제 방위가 어떻든 집의 마당 쪽인 향向이 상대적으로 남쪽이고, 집의 뒤꼍이 있는 좌坐가 상대적으로 북쪽으로 봅니다. 그래서 제상을 차릴 때는 마당을 바라보도록 진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신위 역시 남향하게 되고, 제사의 주체가 되는 신위를 중심으로 방향이나 방위의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신위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제상의 그림에는 글씨가 거꾸로 쓰여 있는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후손이 마음대로 자신을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남향한 신위를 중심으로 좌우를 구분하면 동쪽은 왼쪽, 서쪽은 오른쪽으로 이는 좌청룡 우백호와 동일한 이치입니다.

 

정에 따른다면 양위 합설도 가능

다른 제사와는 달리 기제사忌祭祀를 지낼 때는 해당되는 조상만 모실까(단설, 單設), 아니면 부부를 함께 모실까(합설, 合設)도 고민입니다. 퇴계(退溪, 1501~1570) 선생을 비롯한 선현들도 논란이 많았던 부분으로 단설이 정설입니다. 왜냐하면 기일忌日은 조상이 돌아가신 날이어서 그날에 돌아가시지 않은 다른 배우자를 함께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제사는 단순한 추모일의 개념을 넘어서서 종교 행위로 기능하였고, 인정에 따라 합설을 하는 집안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예법

제사에 여성이 참여하는가? 답은 ''여성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입니다. 제사에서 삼헌三獻을 할 때 초헌은 집안의 장손이 하고, 둘째 잔은 반드시 장손의 부인인 주부主婦가 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성들도 이번 설날 제사에 참여하면 어떨까요?
 

오늘날 제사 상차림

출처 : 서울시설공단 - 제사상 차리는법
  • 남좌여우(男左女右)

산 사람의 상 차림과 반대이다수저는 중앙에 놓는다밥은 서쪽(왼쪽국은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 반서갱동(飯西羹東)

남자조상의 신위술잔은 왼쪽에 놓고 여자조상은 오른쪽에 놓는다남자조상은 서쪽(왼쪽), 여자조상은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 어동육서(漁東肉西)

고기는 서쪽(왼쪽), 생선은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 두동미서(頭東尾西)

꼬리는 서쪽(왼쪽), 머리는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 생동숙서(生東熟西)

나물은 서쪽(왼쪽), 김치는 동쪽(오른쪽)에 위치한다.

  • 좌포우혜(左脯右醯)

(북어대구오징어포)는 왼쪽에 놓고 식혜(수정과등 삭힌음식)는 오른쪽에 위치한다

  • 조율이시(藻栗梨枾)

보통 진열의 왼쪽부터 대추감 순서로 놓는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예서에 따라 붉은 과일은 동쪽흰 과일은 서쪽에 놓고 있다.

 




가가례라고 하여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법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처음의 조그만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안동지역에서는 유명한 현조顯祖의 불천위제사에는 반드시 날고기를 사용한다는 관습이 있습니다. 기제사에는 반드시 익힌 고기를 써야 한다는 예서의 규정에 어긋나지만 이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 현조가 향교나 서원 등에 배향되어 있어 기제사에서도 이에 맞는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의식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먼 옛날 선조의 제삿날에 시루떡이 익지 않아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주부가 자결하는 사고가 난 이후로 제사에 시루떡을 사용하지 않는 집안도 있습니다. 사치를 방지하기 위해 조상이 생시 즐기던 음식을 제상에 올리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있음에도 집안마다 중박계, 쌈, 꼬막, 집장을 올리는 등 집안마다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제사에 온 정성을 쏟은 결과 나타난 현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 UPI뉴스 - 명절 문화가 바뀌고 있다

이제 제사는 자신의 집안의 지체 높음을 자랑하는 수단도 아니고, 양반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의례도 아닙니다. 오로지 조상에 대한 공경과 그 제사문화의 허례와의 충돌만 남은 사라져 가는 문화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제사를 생각해 보면 꼭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제사 때마다 모여 음식장만하고 손님을 맞습니다. 가족끼리 모이니 좋을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작은 사소한 트러블이 발생하기 일 수고 여자들은 음식장만 손님 접대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남자들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삐걱삐걱 사소한 부부싸움으로 이혼 소동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본다면 제사를 꼭 지내는 것이 옳을까요? 상황과 형편에 맞춰 가정의 평화를 찾는 쪽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나름 결론을 내어봅니다.

조상제사에 대해서는 나를 나아 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분의 기일이나, 명절에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제사는 가족 간의 결속의 의미에서도 뜻이 있겠으나 제사 외로 가족간의 만남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맞벌이하는 가정이 늘면서 주부들의 고단한 제사 음식 준비는 많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화목이 더 중요한 것을 인정한다면 과도한 제사 의례를 강요하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손으로서 조상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표시하는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