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옥에 사는 신들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갑자기 웬 귀신 타령이냐고요?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신문지 위에 갖가지 나물과 과일 등을 차려 객귀밥을 대문 밖에 내놓고, 산소에서 성묘 후 고수레를 했던 일이 생각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민속신앙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현대의 집은 보통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지는데 한옥은 여러 채의 건물로 지어져 있습니다. 요즘 현대의 집을 보면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면 거실을 중심으로 부엌과 방, 화장실이 모두 내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단 신발을 벗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방을 다 드나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한옥은 어떠한가요?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있고, 마당을 둘러싸고 남자의 공간 사랑채, 여자들의 공간 안채,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 행랑채, 곳간, 뒷간 등으로 나뉘어 있어 신발을 신고 이동을 해야 하지요. 각자가 독립적인 공간이면서 또는 한 가정의 집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참 신기합니다.
옛사람들은 각 공간에 의미를 두고 잘 가꾸었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쉬고 생활하는 공간을 넘어 건물로서의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인격체로써의 가족처럼 여겼습니다.
옛 사람들은 집터를 잡고 집을 지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많은 신들을 함께 모시고 사는 집을 지었습니다. 이렇듯 집안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신령한 집 지킴이 가신 신앙은 우리 민족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국의 민속신앙은 가신신앙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문화원형백과)
가신, 가택신
집안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신령한 집 지킴이
집을 지키는 가신
가신, 가택신은 집안의 여러 장소를 각기 분담하여 지키는 신들을 말합니다. 집을 지키는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 이 가신을 모시는 역할은 그 집의 안주인들, 즉 여인들의 몫입니다. 유교적 관습에 따라 여자들은 제의 준비만 할 뿐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기에 종교적 열망에 의해 여성 중심의 폐쇄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이 가신들은 우리 집안 여러 장소를 각자 맡아서 수호하면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액을 막아 주고 가족을 보호하는 신입니다. 당연히 신통력도 우리 집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만 한정되겠지요. 이웃집 가택신을 섬기고 받든다고 우리 가족을 지켜 주거나 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가신들 역시 한 가족과 같네요.
옛 설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가신들의 이름은 낯설기도 하고 몇몇 이름은 들어도 보셨을 거예요. 터주신, 삼신할머니, 성주신, 뒷간신 등등...
저는 어린시절 '전설의고향' TV드라마를 즐겨 보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서 지역별로 대대로 전해져 오는 다양하고 신비로운 전설을 드라마로 연출하여 참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드라마에서 아기를 점지해 주는 삼신할머니는 단골로 자주 등장하는 신이였지요. 또, 화장실에 출몰하는 귀신 이야기는 어린시절 뒷간 공포증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화장실을 혼자 가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였었죠. 다들 경험이 있다고요? ㅋㅋ
또 얼마 전에 방영했던 홍천기 드라마에서도 신들이 나오더군요. 생명을 점지해 주는 삼신은 당연 등장하시고 경복궁의 지신 호령, 물을 간장하는 수신 등이 두 주인공을 지켜주더군요. 악당 마왕과 화마도 등장하지만 역시 생명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를 능가할 수는 없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는 이만 접고 신들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성주신
모든 가신들 중 가장 으뜸인 신은 성주신입니다. 성주신은 가옥의 본체를 담당하는 신으로 그 집안의 운수를 관장하는 그 가정의 총체적 가장을 상징하는 신입니다. 성주신은 집안의 대들보를 지켜주는 집안 신령으로서 조상에 해당되는 신령으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성주신은 그 집의 가옥 자체의 신격에 해당하며 가족에서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할아버지 위치에 해당하는 신입니다. 상량신, 성조, 성주대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모든 가택신을 통솔하고 있지만 다른 영역 가신들의 관리 영역의 선을 넘지는 않습니다. 성주신은 집의 주인인 남성을 보호하는 신으로 여겼기 때문에 집의 주재신이 됩니다. 이에 따라 대청의 대들보 위에 성주신을 모신다고 합니다. 집을 새로 지었거나 이사하는 경우 집의 신인 성주신을 모시는 굿으로 성주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성주신은 옥황상제의 제자였는데 글을 잘못 써서 지하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고 해요. 오래도록 땅속에서 있다가 경상도 안동에 있는 제비원에서 소나무 씨앗으로 나오게 되었고, 씨앗이 소나무로 자라 집으로 만들어졌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조상신(삼신)
핏줄을 만들어 주시고 후손을 보살펴주는 조상신. 아이를 만들어 주시고 키워 주시는 삼신. 삼신은 아이의 출생을 맡는 신으로 아이의 점지를 담당합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성별, 아이의 수, 또 산모의 출산과 건강까지 관장하고 있습니다. 삼신의 고유 기능은 아이를 점지해 주는 일이지만 아이가 돌을 넘기기 전까지의 건강과 수명까지 영력을 미친다고 믿고 있습니다. 산모의 건강도 지키며 각 가정의 제액초복(除厄招福)도 관장하고 있습니다. (제액초복: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운을 제거하고 복을 불러들임) 삼신의 명칭은 삼신할머니, 삼신할매, 지양할미, 제주는 삼신할망 등으로 불리며 삼신(三神), 산신(産神)으로 표기한다고 합니다. 삼신은 한분이라고도 하고 또는 삼신할아버지와 함께 둘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삼신의 삼을 숫자 3(三)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밥 세 그룻, 국 세 그릇, 정화수 세 그릇을 제물로 올리는 일도 있습니다.
삼신은 돌아가신 여자 조상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삼신의 신체는 지역마다 다른데 삼신단지, 삼신바가지, 지양동우 등 형태도 다양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신체 없이 건궁, 공중 삼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신체를 상정하는 경우에는 대개 신체 안에 햇곡식, 한지, 실타래 등을 봉인한 뒤 안방 한쪽 시렁을 만들어 모셨거나 안방 장롱 위에 모시기도 합니다. 삼신의 자리가 안방으로 자리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여성의 생활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대부분 안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삼신은 여성 신으로 제물도 간단하고 정갈한 음식을 올린다고 합니다. 삼신을 위할 때에는 주로 정화수를 떠 올렸습니다. 명절인 설에는 떡국,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 동짓날에는 팥죽을 올리기도 합니다. 옛사람들은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거나 어린아이를 키울 때 삼신의 힘에 많이 의존하였다고 합니다.
조왕신
부엌 부뚜막 위에서 불을 관장하는 조왕신. 조왕신은 부엌의 신으로 아궁이, 밥솥 등을 담당하지요. 아궁이의 불이 지펴지는 것은 조왕신의 영력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불의 신으로 숭상하였다고 합니다. 인류는 원시시대 이래 불을 신성시하며 숭배하였습니다. 불씨를 신성시 여겨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이나, 이사 간집에 성냥을 선물해 주는 풍습도 모두 불을 숭배하는 우리의 신앙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조왕신은 조신, 조왕각시, 조왕할망, 조왕대신, 부뚜막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신체로는 조왕중발 또는 조왕보시기(사기 종지)에 정화수를 떠 올려놓기도 합니다. 지역에 따라 정월 열나흘날 밤에 조왕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평상시 조왕중발의 물을 매일 아침 갈아 올리고 별식이 생기면 조왕에게 먼저 올리는 것으로 신앙의례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조왕신은 부엌의 불씨를 관장하는 화신으로 재복신으로 인식하여 조상신의 여신으로 보아 삼신과 더불어 육아를 담당하는 신으로 보기도 합니다. 조왕신은 부뚜막에 깃들어 있다고 여겨 부뚜막 앞에서 의례를 행합니다. 부엌은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식사를 준비하는 안주인들의 공간입니다. 안주인들은 조왕신에게 정화수를 떠 올리고 가족의 건강과 재복을 기원했으며, 특히 객지에 떠나 있는 가족을 위해 밥을 떠 놓고 안녕을 기원하기도 합니다.
터주신
터주신은 집안의 지신을 가리키며, 집터의 동서남북 오방지신 중 중앙신을 일컫습니다. 이 터주신은 철룡, 천룡, 터줏대감, 토지대장, 토주, 터주, 지신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가정신앙에서 집터를 관장하는 가장 높은 신으로 신앙되기도 합니다. 터주신과 지신은 혼용해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전라도에서는 '하늘의 용'의 신으로 여기고 모시기도 합니다. 지역에 따라 지신과 터주신, 천룡신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터주신은 마을이 생성과 함께 시작됩니다. 처음 집을 짓기 전에 터를 닦고 지신제를 올리면서 터주신을 모시게 됩니다. 터주신에는 마을터주와 집터주가 있습니다. 마을의 터주는 마을 전체의 터를 관장하면서 마을의 평안을 지키는 마을수호신이고 집터주는 그 집안의 평안을 보호하는 가정수호신입니다. 가신은 마을신의 축소판으로 집은 마을의 소우주로서 마을이 지닌 공간성과 신앙성을 그대로 집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마을을 대우주 공간으로 성역화하고, 집을 소우주 공간으로 성역화하는 종교적 장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전라도에서는 지신과 터주를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있으며 지신과 유사한 성격의 신령으로 철룡신(천룡신)이 등장하는데 '하늘의 용신'은 뒷마당을 관장하고 장독을 관장하고 나아가서 조미료까지 관장하는 신으로 단지 집의 뒤안을 맡아 보는 신령으로 보기도 합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천룡을 말합니다.
천룡은
하늘에서 비바람의 조화를 일으키는
용이 마을의 주산으로 내려와
마을 수호신이 되고,
다시 천룡당의 지맥이
집에까지 뻗어 내려와
집터의 수호신이 되었다.
터주신은 벼농사 중심의 촌락사회에서 풍수지리와 불교신앙이 마을신앙에 영향을 주어 천룡 신앙으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정월초에 거행되는 지신밟기는 마을의 터주와 집의 터주를 밟아주어 평안을 기원하는 신년 의례라고 합니다.
마을 터주는 주산에 위치하며, 집 터주는 집 뒤안 담 안쪽에 우치하고 이곳에 제물을 올리는데요. 터주신의 신체는 항상 조그만 단지에 쌀이나 나락을 넣고 볏짚 주저리를 씌워 집의 뒤꼍 당산에 둡니다. 터줏가리는 장독대 옆에 놓는 것이 일반적이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집의 뒤꼍 장독대가 있는 곳이 집의 당산이며 이곳에 천룡단을 만들고 터주 단지를 모신다고합니다.
땅의 사악한 기운을 누르는 터주신은 키가 50척이 넘고 큰 귀에 작은 눈, 코는 빈대 코, 손은 조막손이며 발은 마당발이었다고 해요. 상상이 잘 안 되는 모습이네요.
이밖에도 우물을 관장하는 용왕신, 재물을 관장하는 업신, 화장실을 관장하는 뒷간신 등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뒷간신이 무섭습니다. 뒷간신은 화장실을 지키는 신인데요. 뒷간신은 뒷간 각시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젊은 신이라고 합니다. 이 신은 젊고 신경질적인 성격인데 매우 긴 머리를 너무 사랑해서 매일 한 올 한 올 세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뒷간에 들어와 볼일을 보게 되면 이 기척에 여태껏 세던 머리카락 수를 잊어버려서 화가 나 사람에게 앙심을 품고는 해코지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뒷간에 갈 때는 꼭 노크를 하는 것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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