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눈·비가 예보된 가운데 오늘은 하루 종일 흐린 하늘입니다. 오늘 저녁부터 눈비가 내리기 시작해 내일은 전국적으로 봄을 시샘하는 눈·비가 올 것이라는 꽃샘추위 예보가 있네요. 3월~4월 초에 늘 찾아오는 꽃샘추위이지만 꽃이 만개하기 전인데 꽃망울이 추위에 상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됩니다.
우리 초연당에 봄이 무르 익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한창 피기 시작한 운용매와 홍매화가 그윽한 향을 구석구석 풍기고 있습니다.
홍매화는 너무 붉어 흑매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대단한 색감입니다.
봄은 이렇게 우리를 황홀케 하네요.
하루 비내림에 대지가 소생함을 확연히 느끼기도 하고요
요즘 이은호 팀장님께서 매화 관련 책을 탐독 중이세요.
사진과 함께 다산 정약용의 매화 사랑을 공유해 주셨어요.
다산선생께선 홍매보다는 백매가 좋고 겹꽃(만첩 萬疊)보다는 홑꽃(단첩 單疊)이 더 고상한 것이라 하셨어요.
또 백매 중 꽃받침이 녹색인 녹매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녹악매라고 부름)
매화를 감상함에 있어 매화 자체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밝은 달빛 아래 하얗게 피어있는 울 옆의 백매 한 그루는 소복한 여인을 연상케 한다. 그 가지 위에 흰 눈이 소복하게 내리기라도 하면 그 운치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또한 매화를 차로 마셔봄이 어떨까.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따사로운 햇볕이 남향진 한옥 툇마루 분합문으로 들어올 때 오랜만에 찾아온 반가운 지인과 마주 앉아 작설차 우려 놓은 잔 위에 매화꽃 한 송이 띄워놓고 차향과 어우러진 매향을
담소한다면 그야말로 신선이 있겠는가.
아치고절(雅致高節)
매화를 말 할 때 아치고절(雅致高節; 雅 맑을 아, 致 이를 치, 高 높을 고, 節 마디 절)이 떠오릅니다. 아담한 풍치나 높은 절개라는 뜻으로 매화를 이르는 말입니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의 너로구나.
가만히 향기(香氣)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期約) 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 고종(高宗) 때 안민영(安玟英) 시조(時調) 『매화사(梅花詞)』 중(中)-
매화는 엄동설한에 피는 맑은 꽃으로 아치고절(雅致高節)이나 빙자옥질(氷姿玉質)이란 말로 칭송을 하고 있습니다.
빙자옥질(氷姿玉質; 氷 얼음 빙, 姿 모양 자, 玉 구슬 옥, 質 바탕 질)은 얼음같이 맑고 옥같이 깨끗한 바탕 곧 매화의 깨끗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매화는 옛 문인이나 화가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였습니다. 꽃으로도 열매로도 매우 아름답고 탐스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추위에 굴하지 않고 눈 속에서도 맑은 향기를 뿜으며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지조 있는 선비 정신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요.
매경한고(梅經寒苦)
매화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매우 사랑받는 꽃입니다.
중국의 철학자 주희는 매화를 높게 평가여 『경세현문』에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답니다.
有田不耕倉稟虛(유전부경창품허),
有書不讀子孫愚(유서부독자손우).
寶劍鋒從磨礰出(보검봉종마력출),
梅花香自苦寒來(매화향자고한래).
少壯不知勤學苦(소장불지근학고),
老來方悔讀書遲)(노래방화독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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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이 있되 갈지 않으면 창고가 비고,
책이 있되 읽지 않으면 자손이 어리석다.
보검의 날카로움은 연마에서 나오고,
매화 향은 고통과 추위에서 나오네.
젊은 시절 면학의 고통을 알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야 독서가 늦었다고 후회하게 되리.
-『경세현문』 근분편(勤奮篇) 중(中)-
매경한고(梅經寒苦)사자성어는 梅花香自苦寒來(매화향자고한래), "매화향은 고통과 추위에서 나오네" 이 구절에서 유래가 되었나 봅니다.
퇴계 이황의 각별한 매화사랑
매화 사랑하면 퇴계 이황 선생을 빼놓을 수는 없지요. 이황 선생은 살아생전에 매화를 너무 끔찍이도 사랑했다고 합니다. 매화를 소재로 한 시만 1 백수가 넘는다고 해요. 퇴계 이황 선생에게는 매화에 얽힌 애달픈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부인과 아들을 잃은 퇴계 선생은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해 그곳의 관기 두향을 만나 사랑하였으나 1년도 되지 않아 경상도 풍기군수로 발령을 받아 헤어져야 했답니다. 두향이 매화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떠나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매분을 이별 선물로 주었다고 해요. 이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어요. 퇴계 선생은 이때부터 매화분을 아끼고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늙어 자신의 모습이 추해지자 매화에게 그 추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분재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고 유언하셨습니다. 이토록 매화를 각별히 사랑하고 아끼며 생의 마지막까지 매화를 잊지 못했다지요.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두향과의 인연으로 매화를 아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점과 매화를 두향이 보듯 하며 아꼈을 것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어찌 되었든 퇴계 선생은 매화 시첩에 수록된 매화 시를 보면 퇴계 선생의 각별한 매화사랑을 알 수 있네요.
퇴계 선생은 뜰의 매화를 바라보며 매화와 서로 묻고 화답하는 시를 여러 차례 읊고 있다가 달이 밝으면 매화를 바라보며 시를 짓기도 하고 매화가 겨울 추위에 손상되었음을 개탄하는 시를 읊어 제자에게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 매화분을 가져가지 못하여 그리워하다가 제자가 매화분을 보내주자 그 회상을 시로 읊기도 하였답니다.
우리나라 천원권 지폐 전면에 이황 선생과 명륜당 그리고 매화 그림이 있습니다. 퇴계 선생의 시 중 매화시첩에 있는 '도산월야영매' 한 수를 소개해 볼게요.
陶山月夜詠梅 (도산월야영매)
도산의 달밤에 핀 매화를 읊다
獨倚山窓夜色寒 (독의산창야색한)
梅梢月上正團團 (매초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 (불수갱환미풍지)
自有淸香滿院間 (자유청향만원간)
山夜寥寥萬境空 (산야요요만경공)
白梅凉月伴仙翁 (백매량월반선옹)
箇中唯有前灘響 (개중유유전탄향)
揚似爲商抑似宮 (양사위상억사궁)
步躡中庭月趁人 (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繞幾回巡 (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 (야심좌구혼망기)
香滿衣布影滿身 (향만의포영만신)
晩發梅兄更識眞 (만발매형갱식진)
故應知我怯寒辰 (고응지아겁한진)
可憐此夜宜蘇病 (가련차야의소병)
能作終宵對月人 (능작종소대월인)
往歲行歸喜裛香 (왕세행귀희읍향)
去年病起又尋芳 (거년병기우심방)
如今忍把西湖勝 (여금인파서호승)
博取東華軟土忙 (박취동화연토망)
老艮歸來感晦翁 (노간귀래감회옹)
託梅三復嘆羞同 (탁매삼부탄수동)
一杯勸汝今何得 (일배권여금하득)
千載相思淚點胸 (천재상사루점흉)
- 퇴계 이황 매화시첩 -
홀로 기댄 산창에 밤 기운이 차가운데,
매화나무 가지 끝에는 둥근 달이 떠올랐네
구태여 산들바람 불어오지 않아도
맑은 향기 스스로 온 뜰에 가득하리라
산 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빈 듯하고
흰 매화 밝은 달이 늙은 선옹 벗해주네
그 가운데 오직 앞 개울 물 흐르는 소리 뿐이니
높을 때는 상음이요 낮을 때는 궁음일세
나막신 신고 뜰안을 걸으니 달이 사람을 따라오고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매화향은 옷에 스미고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하네
늦게 피는 매화꽃의 참 뜻을 새삼 알겠거니
추운 때를 겁내는 내 몸 응당 아는 까닭이라
가련하다, 이 밤에 내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이 밤이 다 가도록 달과 마주하련만
몇 해 전엔 돌아와 기쁘게 향기 맡고
지난해엔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꽃을 찾았다네
어찌 이제 와서 차마 서호의 절경을
우리네 비옥한 땅의 바쁜 일과 바꿀 손가
노간의 매화 시에 주자가 감동받아
수동羞同이란 글귀로 세 번이나 감탄했네
주자에게 한잔 권하고 싶으나 할 수 없으니
천 년 그리움에 눈물만 가슴을 적시네
최근 홍매를 초연당 담장 삼아 초연당을 둘러 식재했습니다. 이제 심었으니 훗날 멋드러진 매화밭이 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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