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전통한옥생활체험관 초연당

가장 한국적인것이 세계적인 것! 우리것은 소중합니다. 아름답고 우수한 전통한옥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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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이야기- 이름이 붙은 집

초연당웹지기 2022. 1. 27. 00:06
황매실원액

 

오랜만에 포스팅을 합니다. 한눈팔다 보니 어느덧 설날이 다가오네요.

명절을 맞아 오늘은 우리 가옥 한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땅과 우리 몸에 깃들어 전해 내려온 공간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옥 초연당

 

'한옥'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사실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서양의 주택을 '양옥'으로 부르면서 '한옥'이라는 말이 생겨 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옥의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집 들일 거에요.  그 이전에 지어진 집은 지금까지 보존하기에는 많이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한옥은 한국인이 살았던 전통 가옥, 혹은 그런 형식을 가진 집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기록으로 한옥이라는 이름이 언제 처음 쓰였는지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으로 살펴볼게요.

융희 2년(1907년) 4월 23일에 쓴 '가사에 관한 조복문서'인데, 돈의문에서 배재학당에 이르는 정동길 주변을 기록한 약도에서 처음으로 '한옥'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당시에는 '주가'(住家)나, '제택'(第宅) 등과 같은 용어가 흔히 쓰였는데, 한옥이라는 낱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새로이 등장한 건축물을 가리키는 용어와 같은 맥락에서 쓰였습니다.
한옥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는 주택 개량을 논의하면서 '주가'라는 일반적인 이름을 쓰거나, 일본식
 영단주택이나 문화주택과 구별하여 '조선주택'(朝鮮住宅) 등의 표현해 썼습니다. 그러다 '한옥'이라는 낱말은 1975년 삼성 새우리말 큰사전에 등장하는데,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 1991년), 우리말 큰사전(1993년) 등에서 양옥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조선집' 또는 '한식집' 등의 동의어로 나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단지형 공동주택, 아파트 등에 밀려 일반적으로 한옥이 점차 위축되면서 한국 전통 건축물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한옥'이 공식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기품 있는 곡선 지붕과 온돌 굴뚝

요즘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집은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예요. 밖을 나가면 어디서든 높은 아파트를 볼 수가 있습니다. 주변에 녹지조성을 하였다고는 하나 삭막하기 이를 데 없지요. 지금이야 양옥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흙과 나무와 기와로 한옥을 짓고 살았어요.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한옥에 고스란히 담았답니다.

한옥은 아주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기후에 맞게 발전되었고, 지역에 따라 그 모습도 다르게 발전해 왔어요.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사람들은 오래되고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옥 역시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편한 과거의 집으로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100년사이에 아파트와 같은 신식 현대의 집들이 많이 지어지게 되었어요.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옥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어 한옥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배산임수 초연당의 집터(뒤로는 산을 지고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집터)

 

풍수지리설

우리 조상들은 아무 곳에나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많은 것을 재고 따져서 집터를 잡고 건물을 올렸다고 해요.

풍수지리설은 산, 물, 땅의 기운이 어우러져 그곳에 사는 사람의 운에 영향을 준다는 설이에요. 옛 우리 조상들은 집터나 무덤을 만들기 전에 풍수지리적인 위치를 따지고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풍수지리로 보았을 때 좋은 터를 '명당'이라고 해요. 명당에 집을 짓거나 묘를 쓰면 그 집안일이 잘 풀리고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답니다.

배산임수(背山臨水)는 산을 등지고 바라보는 곳을 이르는 말입니다. 풍수지리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여기는 형태입니다. 옛날에는 산에서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했고, 논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배산임수는 정말 중요한 입지 조건이었지요.뒤로는 산을, 앞으로는 물을 마주하며 남쪽으로 짓는 것이 이상적이며, 조선시대의 전통가옥은 배산임수의 원칙을 지켜 지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산의 모양이나 물 줄의 모양에 따라 세부적으로 조율하는데, 이는 건축주의 사주팔자나 직업, 지병 등에 따라 임의로 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옥은 바람의 통로와 물의 위치, 산과 평야와의 거리와 방향 등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집의 목적과 거주자의 성향에 맞춰 짓는 건축물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획일적인 공동주택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에 붙이는 이름

요즘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공동 주택에서도 이름이 있지요. 무슨 아파트, 무슨 빌라 몇 동 몇 호.... 이런 식으로 식별하고 주소로 기억을 하지요.
그런데 한옥은 이름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주인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추사고택', '명재고택'처럼 부른답니다. 또는 집의 지역적 위치나 지명을 넣어 부르기도 합니다.  혹은 주인이 좋아하는 글귀를 따서 '산천재', '서백당'과 같이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집 이름을 당호(堂號)라 부르는데 이 당호를 문 위에 걸어 놓기도 합니다.

 

초연당 길상당

 

당호 끝에 붙는 '정사', '정', '당', '재', 등은 때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데 그 용도가 어떻게 될까요?

  • 전(殿) : 궁궐이나 사찰처럼 위계가 높은 건물
  • 당(堂), 헌(軒), 와(窩) : 살림집이나 개인이 거처하는 건물, 공사를 처리하는 집
  • 누(樓), 정(亭), 정사(精舍), 대(臺) :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건물
  • 각(閣) : 방이 없는 건물, 석축이나 단상에 높게 세운 집

 

경복궁 근정전

'전'자가 붙는 경우를 살펴보면 경복궁을 예로 들면 임금님 집무실 근정전과 더불어 명정전, 인정전, 자경전, 대조전과 불국사의 대웅전 같은 큰 건물에 '전'자를 붙였습니다.
'당'은 '전'보다는 한 등급 격식이 낮은 건물로 전에 딸린 부속건물이거나 부속 공간의 중심건물을 부르는 말입니다. 궁궐에서는 양화당, 영화당, 희정당 등과 같이 주전에 부속된 건물을 나타내며, 사찰에서는 불전에 딸린 선당과 승당 등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사당, 강당 등 주전을 '당'이라고 하였고 살림집에서도 양진당, 충효당, 독락당, 일성당처럼 주전을 '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초연당도 '당'이 붙어있습니다.
경복궁의 연회를 위한 건물 '경회루', 경치를 구경하기 위해 하천가나 언덕 위에 지어진 건물에는 주로 '정'자를 많이 붙였습니다. 살림집의 사랑채나, 서재 등에도 이름을 따로 붙였는데요 우리 초연당의 사랑채는 '회춘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중한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는 집"을 의미하여 '회춘당'입니다. 그냥 사랑채라고 부르면 될 것을 굳이 왜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름하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오릅니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존중하고 집의 구석구석에 의미 있는 이름을 붙이고, 집과 사람이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 선비들이 자신이 머무는 건물에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자신이 바라는 것, 살면서 자신이 지키고 추구해야 할 삶을 집의 이름으로 지어 부름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요. 

초연당 순향문

 

몇가지 한옥의 깊은 뜻을 가진 이름을 살펴볼까요?

강릉 선교장이라는 부잣집 사랑채는 열화당(悅話堂)으로 지어 부르며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답니다.  조선시대 대학자 손중돈은 '관가정'이라는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집'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또 명필가 이진휴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귀향하여 자신의 거쳐를 마련하고 당호를 지었습니다. '시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하게 늦게까지 푸름을 머금는다(遲遲澗畔松 鬱鬱含晩翠)'는 글귀에서 따온 만취헌. 소나무처럼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경주 우재 손중돈의 관가정

훌륭한 문인 김득신은 어렸을 때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해 겨우 열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해서 주변에서는 공부를 말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독서를 무척 좋아해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만 번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서재는 '억만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도산서당 [출처 : 아시아일보]

또 성리학자 퇴계 이황 선생님이 지은 도산서당은 참 아담하고 예쁜 집입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이 말년에 지은 집으로 이곳에서 제자도 양성하고 글도 쓰며 기거했다고 합니다. 본인이 기거하는 방의 이름은 완락재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답니다. '감상하고 즐기니 평생 여기에서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는 주자의 말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도산서당의 방 앞에 있는 작은 마루에 '암서헌'이라는 마루 이름을 지어 붙여 놓았는데 이 역시 주자의 글귀에서 따 온 이름으로 '작은 집에 산다'는 뜻으로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이황 선생님은 자신이 머무는 집을 겸손하게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집의 이름에 담긴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지요?

초연당 2층 누각 옥호루

앞으로 옛 고택이나 한옥에 갈 일이 있다면 이름을 살펴보세요. 그 집주인이 앉았던 마루에 앉아 스치는 바람 냄새를 코끝으로 맡으며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마당을 보며 그곳에서 살았던 옛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세요. 옛 집주인의 마음이 느껴질 거예요.

초연당의 사랑채 회춘당 툇마루

노은주 임형남이 쓴 《생각을 담은 집 한옥-옛사람들의 집 이야기》 도서 일부 내용을 참고해서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