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연당에서 백차를 재배할 수 있도록
백차 종자를 제공하고 아낌 없는 정보를 제공해주신 차나무 재배의 최고 권위자,
허인옥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님과 사석에서 짧은 인터뷰를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아모레퍼시픽(태평양)의 창업주 고(故) 서성환 회장과 함께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주 차밭, 바나나, 유자 단지를 일구어낸 한 장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일을 50년 동안 한다는 것은 어떤 것 일까요,
50년의 세월을 종자를 심고 재배하는 것을 연구해오신 허인옥교수님의 인터뷰에는 그 시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깊은 학문적인 체취도 나는 듯합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백차를 연구하게 된 배경
내가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해외에서 차나무 종자를 들여와 이 한국 땅에 재배하는 일을 해왔으니까, 벌써 한 40년, 50년 세월을 이 차밭에 바친 셈이지요.
(사진을 보여주며) 자, 보세요. 이게 우리 백차 나무가 자연에서 온전하게 다 자랐을 때의 진짜 본래 모습입니다.
비닐하우스 같은 온실에 넣고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여서 키우면, 백차가 가진 본연의 좋은 기능이나 성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버려요. 그렇다고 그늘진 음지에서 키우느냐? 음지에서도 원래 백차의 뛰어난 특성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리포터 : 오설록처럼 자본이 많은 큰 회사에서 이 백차를 대대적으로 크게 확 심어버렸어야 했는데 참 아쉽습니다
내가 태평양(아모레퍼시픽)과 인연을 맺고 한 45년에서 4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차밭을 일구었는데,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던 서성환 선대 회장님이 살아계실 동안은 참 감사한 시절이었습니다.
차 재배에 관해서는 내가 설계한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다 밀어주었고 내 뜻대로 처리를 했지요.
그런데 나를 그렇게 알아주던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이제는 내가 더는 현장에 남아서 찝쩍거릴(사사건건 참견할) 수가 없잖아요.
이제는 그분의 자제분들(새로운 경영진)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새 시대인데 말입니다.
안타까운 건, 내가 이 백차 재배법을 정립해서 본격적으로 착수(재배 추진)를 한 시점이 하필 회장님이 돌아가신 직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 경영권을 승계한 자제분들은 늙은 내가 새로 추진하려는 이 백차 재배 사업에 대해서 별로 허락해 주지도 않았고, 그리 권장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결국 선대 회장님 사후에 백차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 바람에,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심어보지 못하고 멈추게 된 것이지요.)
그 당시에는 백차라는 품종을 선발해서 고정하거나, 또 대량으로 번식시키는 것에 대한 국내 연구 자료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다른 분들이 중국 같은 곳에서 품종을 들여와 조금씩 시도해 보곤 하셨지만, 대부분 다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를 하셨지요.
중국에서 백차를 들여오다
리포터 : '당시 중국에서 종자를 반출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연구용으로 가져오셨나요?
그 당시에는 숨겨서 들여온 것이 맞습니다.
묘목으로 들여와서 우수한 백차 고유의 품종을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데에만 꼬박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모든 노력이 참 아깝게 되었지요.
(그렇게 공을 들여 품종을 완성해 놓았는데, 선대 회장님이 돌아가신 후 더 크게 펼쳐보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듭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리포터가 '자신도 과거 대만에서 꺾꽂이를 하려고 가지를 숨겨와 심어봤는데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시며)
예, 지금 시대에야 백차도 잘 자라고 다들 연구도 많이 하지만, 우리가 처음 개척하던 시절에는 참 차나무에 대한 지식이나 연구가 미진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 당시에는 학계나 현장에서도 '차나무는 반드시 씨앗(종자)으로만 번식시켜야 한다'고만 생각했고, 가지를 잘라 심는 '삽목' 방식은 안 된다고만 여겼던 분위기였습니다.
더구나 보성 지역 같은 곳의 민간 차밭 단지들은 전부 그런 전통적인 종자 방식으로 조성이 된 상태였습니다. 씨앗으로 심다 보니 찻잎의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가 나무마다 다 들쭉날쭉해서, 나중에 기계를 도입해 수확하는 자동화나 기계화 작업을 하기가 어려웠던 거지요.
저는 그 당시 그런 학계나 현장의 모습들을 보면서 연구자로서 참 답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는 차나무를 삽목하는 기술을 제대로 가진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나무를 심을 때 포기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 한 자리에 두 주씩 심을 것인지 한 주씩 심을 것인지조차 정해진 기준이 없어서, 그 적절한 방식을 정립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논쟁을 거쳐야 했습니다.
*(정보 : 차나무는 씨앗(종자)을 심으면 부모 나무와 똑같은 성질의 나무가 나오지 않고, 주변의 다른 차나무와 섞인 '잡종'이 태어나는 특성이 있다)
리포터: (사진을 보며) 그러면 지금 이 백차나무는 봄이 되면 저렇게 온통 하얗고 노란빛으로 다 변하는 건가요?
3월 중순 무렵부터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하얀 빛깔로 자라나요. 그렇게 6월 초순까지 하얀 빛을 유지하다가, 날이 더워지고 10월이 넘어가면 다시 푸른 녹색으로 서서히 변해갑니다(녹화 현상).
이것은 찻잎 속의 엽록소 함량이 계절과 온도에 따라 스스로 변하는 현상인데, 인간의 기술로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본래 타고난 유전적 특성입니다.
다만, 재배하는 환경도 조금은 작용을 하더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닐하우스 안에 심어서 인위적으로 온도를 너무 높여주면, 이 백차 고유의 아름답고 하얀 새싹이 제대로 돋아나지 못합니다.
리포터 : '교수님, 이 차는 저희 집에서 전통 떡차랑 여러 가지로 직접 다 만든 것입니다.
지난번에 교수님께서 보내주셨던 귀한 귤도 제가 진피(귤껍질 차)로 정성껏 만들었고,
아까 대접해 드린 황차까지 모두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하고 선물을 건네자
이제는 무언가 더 도와주고 싶어도 나이가 들어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를 않네요.
리포터 : 아닙니다, 교수님. 이렇게 귀한 백차 종자가 자라는 밭을 고스란히 지키고 계시면서 베풀어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훌륭하고 감사한 일인데요
요즘 젊은 연구자들이나 학생들은 다들 각자 자기 할 일들이 참 많고 바쁘지요.
다른 학문 분야들은 다행히 문하생들이 잘 이어받아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데, 유독 이 차(茶) 연구만큼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아모레퍼시픽(태평양) 같은 큰 기업이나 대형 다원들만 겨우 살아남았을 뿐,
일반 민간 농가들은 이 까다로운 백차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차 재배에서도 전부 손을 떼고 떠나버렸던 시절이 길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세월이 묘하지요. 그렇게 다들 손을 떼던 시절을 지나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국산 차 원료가 너무 모자라서 세상이 아우성입니다.
들어보니 좋은 차 원료를 구하려는 예약이 보통 3년 치나 밀려있다고 하더군요.
차를 만들 원료가 워낙 귀하고 부족하다 보니 지금은 참 그런 귀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흙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초연당 김관중 당주 : 교수님, 저도 참 고민인 게 이 귀한 백차 종자를 가져다 심으려면 토질을 먼저 개선해야 하더라고요. 준비 없이 그냥 맨땅에다 심어보니까 통 자라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좋은 토양을 만드려면 흙을 깊숙이 파서 뒤엎고, 또 한 번 뒤엎어주는 정직한 노동이 먼저지요.
그리고 나무를 심기 전에 땅에 유기질 퇴비를 미리 아주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특히 그 유기질 퇴비 속에 '인산 비료'를 반드시 미리 섞어서 주어야 해요. 요새는 '용성인비(인산질 비료의 일종)' 같은 좋은 성분들이 잘 나오니까,
땅을 준비할 때 퇴비와 용성인비를 미리 한 번 잘 섞어서 밭에 넣어주면 됩니다.
처음에 이렇게 흙을 한 번 잘 만들어두면 향후 30년, 40년 세월이 흘러도 영양 결핍 없이 잘 자라납니다.
리포터 : 교수님, 그러고 보니 예전에 오설록 차밭을 처음 만드실 때도, 차를 심기 전에 가축부터 먼저 기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오설록을 처음 시작할 때 그 넓은 면적이 거의 100만 평에 달했습니다.
그 광활한 황무지를 차밭으로 만들려니 땅을 비옥하게 할 퇴비를 도저히 외부에서는 그만큼 확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돼지를 키우는 양돈업이었습니다.
참 돌이켜보면 운명이라는 게 묘하지요. 보통은 고기를 팔려고 양돈을 하지만, 우리는 순전히 차밭에 줄 '좋은 거름(퇴비)을 생산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거름을 얻으려고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양돈이었는데,
돼지들이 참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나중에는 마릿수가 어느새 2,000마리가 훌쩍 넘어가 버렸어요.
바나나와 유자
그리고 내 평생의 연구가 차(茶)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본래 열대식물을 깊이 연구하던 학자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19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 땅에는 열대식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나 말고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 시절에 저희 시험소에서 한국 최초로 바나나 번식에 성공하고,
세포를 복제해 대량으로 키워내는 '조직 배양' 기술을 남들보다 아주 일찍 정립을 해냈습니다.
태평양의 서성환 회장님과 그 주변 인물들이 '우리도 제주도에서 한번 바나나 농사를 크게 해보자' 하고 뛰어들었지요.
내 연구 기술을 바탕으로 제주도 바나나 농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 당시 참여했던 분들이 아주 큰 부를 얻어서 억만장자가 되었죠.
역사상 외국 과일 수입이 전면 개방되기 전에는, 이 국산 바나나가 아주 참... 대단히 값비싸고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성환 회장 같은 분들은 역시 큰 기업가라서 그런지, 확실히 남다른 혜안과 아이디어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내가 학자로서 '제주에서 이렇게 한번 해봅시다' 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면, 그분은 주저 없이 딱 결단을 내리셨지요.
참 운도 좋았고, 그분과 손잡고 하는 일마다 다 잘 풀려서 돈이 되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차밭과 바나나를 성공시킨 뒤)
나중에는 제주 중산간 지역에다가 대규모 유자 단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자가 하도 부족해서 공급이 안 되니까,
대형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하우스 유자 단지'를 몇십만 평이나 조성했지요.
그렇게 유자 단지까지 딱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돌아가고 나니까, 비로소 '이제 연구자로서 내 역할은 다 마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로 나는 서 회장의 자제분들(새 경영진) 체제와는 별로 접촉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 입장에서 '우리 아버지의 옛 동지이자 친구'인 나를 겉으로는 깍듯하게 존경해 주겠지만, 한편으로는 참 얼마나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굳이 자식들 일하는 데 찾아가서 귀찮게 안 합니다.
그분(서 회장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내가 자식들 일하는 곳에 그냥 한 번도 먼저 기웃거리거나 찾아간 적이 없지요.
*(정보 : 허인옥 교수님이 1960~70년대에 한국 최초로 제주도에서 열대식물인 바나나의 '조직배양(무병묘 대량 번식)' 기술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기술을 보고 아모레퍼시픽(태평양)의 서성환 회장(과 그 주변 인물들)이 제주도에서 대규모 바나나 농사에 뛰어들게 됩니다.
당시 상황: 1980년대 당시 한국은 외국 과일 수입이 전면 금지되어 있어서 국산 바나나가 '금값'이었습니다. 바나나 한 송이가 아니라 '낱개 한 개'가 짜장면 한 그릇보다 비싸던 시절이었습니다.결과: 허인옥 교수님의 기술 지원을 받아 제주도에서 바나나 하우스 농사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억만장자'가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허인옥 교수님은 당신이 개척한 기술로 대기업과 농민들을 부자로 만들었고, 10년의 연구 끝에 한국형 백차 품종을 완성해 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알아주던 유일한 군주(서성환 회장)가 떠나고 새 시대가 오자, '늙은 내가 끼어들면 참견이 되고, 자식들에게 부담만 줄 뿐'이라며 단 한 번도 먼저 기웃거리지 않고 물러나셨습니다.
박수칠 때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평생을 바친 내 업(業)을 후학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내어주는 마음이 얼마나 숭고한지 노교수님의 삶을 통해 배우게 된것 같습니다.
화려한 대기업의 성공 신화 뒤에서 묵묵히 흙을 만지며 제주의 초록빛을 만들어낸 허인옥 교수님.
그 정직한 노동과 기품 있는 뒷모습에 깊은 존경을 표하며,

이렇게 전달해주신 백차품종을 꼭 우리 초연당에서 잘 키워서 좋은 백차를 만들어가기로, 깊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초연당을 만드실때 당주님은 "이 우리의 전통 가옥을 후대 사람들에게 이어지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초연당은 허인옥 교수님이 10년간 노력하여 얻어낸 백차를 또 후대 사람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초연당의 백차이야기 기대해주세요
https://youtu.be/NfzSjY1ibr8?si=_KlCgbafdzSBYY-d
백차를 연구한 50년|허인옥 교수 인터뷰 (초연당 백차 이야기)
초연당 백차 이야기. 국내 차나무 재배의 권위자인 허인옥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님과의 인터뷰 일부를 담았습니다. 1970년대부터 해외에서 차나무 종자를 들여와 우리나라에 재배하고, 아모레퍼
www.youtube.com
초연당의 백차 이야기 1편 - 아래 링크를 통해 보세요 ^^
https://choyeondang.tistory.com/524
초연당 백차 이야기 ① 차나무를 심다
좋은 차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우리가 차를 마실 때는이미 완성된 찻잎만 만나게 되지만,그 한 잔이 우리에게 이르기까지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차의 맛과
choyeondang.tistory.com
허인옥 교수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
https://choyeondang.tistory.com/m/527
백차품종을 주신 허인옥 교수님(제주대학교명예교수) 인터뷰 (2부)
차나무를 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계절을 무사히 견디게 하는 일입니다. 특히 겨울과 이른 봄은 차나무에게 가장 힘든 시기인데요. 허인옥 교수님은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choyeond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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