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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감상 이후 감상을 권장합니다-
요즘 유난히 많이 언급되는 영화가 있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3월 중순 기준 누적 관객 수 1,37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한동안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 영화의 흥행은 단순히 한 작품의 성공을 넘어
관객들이 여전히 한국 영화에 마음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았다.
정말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태도였다.
기록을 읽고, 상상으로 이어 붙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과 엄흥도라는 인물을 중심에 놓고 이미 잘 알려진 비극을 전혀 다른 결로 풀어낸다.
장항준 감독은 계유정난의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유배된 단종과 그 곁에 남은 사람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관심을 끌 수 있는 (수양대군) 세조를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고, (계유정난) 잔혹한 권력 다툼의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지 않은 선택도
더 인상적으로 단종의 모습을 다가오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기록을 읽는 방식이었다.
한명회
노쇠한 간신 vs 장대한 위압감
이를테면 한명회를 그려낸 방식에서도
대중적으로 익숙한 ‘늙고 노쇠한 간신’의 이미지를 반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속 한명회는(유지태 배우) 기골이 장대하고 위압적인 존재로 등장하는데,
장항준 감독은 인터뷰에서 후대의 왜곡된 이미지( 세조실록에서 간신이란 이래야 한다는 이미지를 덧씌움) 보다
당대 기록에 나온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에 능했다”는 내용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유지태 배우의 한명회는 낯설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
<신도비명>
(한명회의 외모에대한 설명)
얼굴이 잘나고 키가 커서 바라보면 위대하였고 규모와 기개가 우뚝하여 무리에
서 돋보였다.
- 영화 <관상>에 나온 노쇠한 한명회의 이미지는 칠싹둥이라서 어릴적에 고생했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보고있다.
엄흥도
기록 속 두 인물을 합치다
엄흥도라는 인물의 설정도 인상적이다.

기록상으로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와 단종의 죽음에 관여한 통인은 다른 인물로 전해지지만,
영화는 이 둘을 하나의 인물로 결합했다.
감독은 이것이야말로 기록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우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통인과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를 영화적으로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권33
숙종 25년 1월 2일 (1699년)
“임금이 말하였다. 단종대왕이 영월에 계실 때 늘 모시던 공생이 차마 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대신하겠다고 자청하여 마침내 그것을 행하였다.”
(숙종시기에 단종 복권과정이 있었다보니 상대적으로 기록이 많은편이며 자살했다는 세조실록의 기록을 뒤엎는 주장도 등장한다)
『연려실기술』 원집, 단종조 「노산군사」
“모시던 아이(통인)가 스스로 죽이기를 자청하여 활줄에 노끈을 이어 목에 걸고 문 밖에서 잡아당겨 죽였다.”
『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 권18
현종 10년 10월 24일 (1669년)
“단종이 이미 죽은 뒤에 감히 그 시신을 거두는 자가 없었는데,
호장 엄흥도가 가서 곡을 하고 장사지냈다.”
이 지점이 좋았다.
역사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기록을 죽은 문자로 두지 않고
살아 있는 이야기로 다시 엮어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밥심

영화를 보며 새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밥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쓰지만,
이 영화에서 밥은 그저 끼니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고,
낯선 마음과 마음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었다.
단종이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계기 역시
결국 함께 나누는 밥 한 끼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참 좋았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남긴 애도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가슴속에 남은 장면은 어쩌면 끝내 보여주지 않은 장면이었다.

단종의 마지막은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 죽음을 노골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선택은 오히려 그를 한 인간으로, 한 왕으로 존중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그분이 가시는 장면을 우리는 보지 않는 것이 애도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애도나 슬픔은 산자들의 몫이라는 감독의 철학이 와닿았다.
수많은 작품들이 역사의 비극을
더 선명하게, 더 잔인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감정을 밀어붙일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였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절제함으로써 더 오래 남았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점이 참 좋았다.
그동안 잔인하고 사실적인 비극 묘사를 볼 때마다 왜 불편했는지를 이 영화를 보며 조금 알 것 같았다.
애도는 반드시 시각적 자극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영화는 꼭 다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영월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스크린 밖에서도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실제 배경인 단종의 유배지, 강원 영월에서는 오랫동안
단종을 기리는 축제가 이어져 왔다.
단종문화제는 1967년 ‘단종제’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영월의 대표 향토문화제다.
단종의 능 장릉이 있는 영월에서
그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제의적 행사들이
축제로 자리 잡아온 것이다.

올해 단종문화제는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영월에서 열린다.
장릉, 청령포, 동강둔치 일대에서
단종국장 재현, 단종제향, 각종 체험과 공연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시대에 따라 축제의 형식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단종을 기억하고 기리는 마음이 중심에 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자료를 읽다 보니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1970년대 단종제 사진 속에는
산비탈을 가득 메운 사람들,
먼 길을 걸어와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단종 역할을 맡은 인물이 지나갈 때 두 손을 모으고 숙연히 바라보던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지금처럼 세련된 축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안에는 분명한 진심이 있었다.
어쩌면 이 영화의 흥행은
새로운 관심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영월 사람들이 오래도록 지켜온 애도와 기억에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영월에 사는 한 분이 남긴 댓글도 참 인상 깊었다.
매년 단종문화제 무렵이면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단종의 눈물처럼 여겼다고.
올해도 비가 올지 모르지만,
그 눈물이 단종의 것이 아니라
그를 오래 생각해 온 백성들의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4월의 영월을 생각하게 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여준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지금도 기억하는 장소와 사람들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겨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 4월의 단종문화제는
예년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단순히 “실화였대” 하고 끝내기보다,
한 번쯤 영월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 오래 이어져 온 기억의 방식까지 함께 떠올려보아도 좋겠다.
기록을 조합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의 태도도 좋았고,
그 비극을 끝내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려 했던 절제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스크린 밖에서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가 단종을 다시 불러냈다면,
단종문화제는 오래전부터 그를 놓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1967년부터 지금까지도 단종제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올해 4월의 영월은
단지 축제가 열리는 장소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가 되살린 마음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기억이 만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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