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심껏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가 이토록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등 여러 이유로 어떤 직업은 사라지고, 어떤 직업은 생기기도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존재했던 직업들중 재미있는 직업들 몇가지를 소개해보려한다.
1. 대립군

조선시대 16세에서 60세의 양인 남성은 수시로 군사 훈련을 받다가 비상시에 동원되었다. 이런 병역의 의무를 군역이라 한다.
이때에도 합법적인 군면제 방법이 있었는데, 포목을 내면 군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군역 대신 내는 포목을 ‘군보포(軍保布)’ 이를 줄여서 군포라고 한다.
군포는 1년에 2필을 냈으나, 1751년(영조 27) 균역법이 시행되면서 1필로 줄었다.
비록 군포가 1년에 1필로 줄었으나 이것 조차 납부가 어려운 가난한 서민들이 많았다,
생업을 위해 일을 놓을 수 없고, 군포도 바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대립(代立)군을 이용했다.
대립군이란 품삭을 받고 대신 군대에 가주는 알바로 군포보다 저렴했다.
죄를 짓고 그 벌로 군역을 받은 경우에 대립군을 이용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고한다.
1700년(숙종 26) 이세정(李世禎)은 과거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러 과거시험장을 지키는 군역을 이행하라는 벌을 받았다.
이세정은 자기 종인 최말선을 대립군으로 쓰게 했다. 최말선이 대립군이 되어 과거 시험장을 지키자 이세정은 답안을 고쳐주는 이들과 함께 과거 시험을 치러 급제를 했다.
또 돈 있는 군졸들은 제멋대로 대립군을 사서 자기 임무를 떠맡기기도 했다.
1638년(인조 16)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비변사는 파발이 지체되는 원인을 담당 군졸이 대립군을 사서 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다보니 군사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군사력도 엉망진창이 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나라에서도 대립군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한다.
군인들에겐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패를 차도록 하고 만약 대립군을 쓰다가 걸리면 온 가족을 변방으로 보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립군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라에서는 군역으로 차출된 일반 양인들의 경우 대립군을 고용하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군역으로 인해 농민들의 생산력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것이기도 했고, * 번상 보병(番上步兵)의 경우 실질적인 임무는 주로 토목 공사였기 때문에 군사력에 큰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대립군을 고용한 기록도 남아있다.
*번상보병(番上步兵)'은 조선시대에 군역을 지던 일반 보병을 의미하며, '번상군(番上軍)'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특정 지역에서 징발되어 근무하는 군인으로, 기술이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기갑병이나 포병 등과 같은 전문 인력과 대비되는 일반 병사이다.
1663년 11월 27일 병조판서 김좌명은 “영동(嶺東)의 재해 지역 중에도 강릉(江陵)과 양양(襄陽)이 심한데, 두 고을의 기병(騎兵)이 지금 당번의 차례를 당하여 의장(衣裝)이 허술하니, 얼어 죽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러니 번(番) 서는 것을 1개월 감해주고 그 대신 쓰고 남은 군포(軍布)를 가지고 고군(雇軍)을 대립(代立)시키는 것이 편할 듯합니다.”라고 아뢰니 임금이 따랐다고 한다.
재해가 심한 지역인 강릉과 양양은 정규군을 운용하는 것이 어려우니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급한 대로 품삯을 주고 대립군을 고용할 것을 건의했건 것이다.
대립군은 한국전쟁 때도 있었다.
1950년 7월 27일자 『관보』 제385호에 「대통령령(긴급명령 제6호): 징발에 관한 특별조치령」 제7조 8항에 의거하여 35세에서 45세까지의 남성을 노무자로 징집하였다.
당시 노무자들은 미군과 유엔군 진지에 포탄이나 식량 등을 지게에 지고 날라다 주었다.
따라서 노무자로 끌려가면 죽을 확률이 높아서 주인이 머슴한테 “내가 네 가족 다 책임을 질 테니 대신 복무하고 와라.”라고 해서 주인 대신 복무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2. 매품팔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판소리 중 하나인 <흥부가>에서는 관아의 아전이 홍부에게 매를 대신 맞고 돈을 벌라는 제안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매품팔이'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매품팔이란 돈을 받고 매를 대신 맞아 보수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흥부가>에 나올 정도라면 것은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흥부로 대표되는 가난한 백성들은 어떻게 해서 돈을 받고 대신 매를 맞는 일을 했던 것일까?
간단히 생각하면 죄를 지은 양반이 자신 대신 매를 맞을 사람을 구하고, 돈이 필요한 가난한 백성이 이에 응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예기禮記』에는‘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형벌은 사대부에 미치지 못하고 예는 서인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선전기에는 양반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육체적인 형벌 대신 속전贖錢이라고 부르는 벌금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된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터였다.
화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견고했던 신분 계층이 균열이 생겼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이 늘었고, 장사와 대외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중인과 백성들이 존재했다.
부유해진 이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이 바로 양반이 되는 것이었다.
조선후기에는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빈번하게 벌어졌는데,
막대한 돈을 들여서 지방관의 자리에 오르면, 관직을 사기위해 들이 돈을 매꾸어야했고, 더 높은 관직을 사기 위해서 돈을 모아야만 했다.
그런 부패한 관리들의 먹잇감이 된 것이 바로 돈으로 신분을 산, 뼈대 없는 양반들이었다.
누명을 씌우거나 혹은 이런 저런 죄목으로 잡아다가 가두고 매를 친다고 협박을 가하면 돈으로 산 양반의 체면이 손상될까 두려워진 이들은 대신 매를 맞아줄 매품팔이를 구했던 것이다.
물론 대신 매를 맞아주는 것을 허락해주는 명목으로 관리와 아전들에게도 막대한 돈이 흘러들어갔다.
부패의 먹이사슬 제일 끝에 대신 매를 맞아주는 매품팔이라는 직업 아닌 직업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매품팔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양반들이 별다른 기록을 남겨놓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마경장

조선시대의 거울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보는 유리거울이 아니라, 청동이나 백동으로 만든 금속거울이 주로 사용된 거울이었다.
유리거울이 아닌 금속거울이다보니 사용을 하면 습기나 땀 등에 약해서 쉽게 녹이 쓸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거울 재료였던 청동이나 백금은 금속 특성상 수시로 녹을 벗겨내고 갈고닦아야
거울로써의 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었다.
마경장은 조선시대에 청동이나 백통으로 된 금속 거울을 갈고 닦아서 본연의 맑고 선명한 빛이 나도록 만드는 장인이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에는 마경장에게 제공한 경려석, 중려석, 연일여석, 법유 등의 도구가 나온다.
**강려석은 석질이 매우 단단한 숫돌, 중려석은 강도가 중간 정도 되는 숫돌, 연일여석은 경상북도 포항의 연일에서 나는 석질이 곱고 부드러운 숫돌을 말한다. 법유는 들기름이다.
도구는 단출하지만 재질에 맞춰 거울을 연마하는 강도를 조절해야 했기에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전문성이 필요했다.
세 가지 숫돌을 적절히 사용하여 거울 표면을 반들반들하게 다듬고, 여기에 적당량의 들기름을 발라야 거울이 빛을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전문성의 필요로 인해 거울을 만드는 경장에서 마경장이 갈라져 나오게 되었다.
『연산군일기』 10년 1월 14일 기록에 따르면 연산군은 사헌부에 “이달 13일에 거울 가는 장인[磨鏡匠] 15명을 이미 데려오도록 하였는데 곧 데려오지 않았으니, 공조와 상의원(尙衣院)의 해당 관원을 국문하라.”라고 하는 전교를 내린다.
15명의 마경장이 필요했던 것은 그만큼 수리할 거울이 많았음을 뜻한다. 호색한인 연산군은 연회에 동원할 기녀의 숫자에 비례해 그만큼 많은 마경장을 필요했던 것이다.
연대와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최고운전』에서 주인공 최치원은 승상의 외동딸인 나 소저를 만나기 위해 거울을 수선하는 행상 노릇을 한다.
나 소저는 유모를 통해 자신이 아끼던 거울을 최치원에게 맡긴다. 최치원은 그런 나 소저의 소중한 거울을 일부러 깨트린다.
이를 빌미로 최치원은 승상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처럼 마경장은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며 마치 칼을 갈아주듯이 거울을 갈아주었을 것이다.
유리 거울이 보급되면서 마경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즈음 마경장은 온갖 기물을 닦고 갈아 빛을 내는 마광장(磨光匠)으로 업종을 변경한다. 일종의 광택 전문가로 전업하게 된 것이다.
집안에 고이 모셔둔 갑옷 장식, 금관 악기, 무기, 의례에 쓰이는 각종 기물이 마광장의 손을 거치면서 기품 있는 물건으로 새롭게 변모하게 되었다.
4. 조방꾼

조방꾼은 쉽게 말하자면 기생의 매니저 격 되는 사람이였다.
기생하면 대부분 사극에 자주나오는 접대부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운데,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기생은 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던 공노비였다.
각종 국가 행사에 동원되어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거나 부임한 관리에 시중을 드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국가 소유인 기생을 사적으로 부른다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은밀하게 일반 남성과 기생을 연결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조방꾼이었다.
조선 후기엔 공노비에서 풀려난 기생들과 자발적으로 기생이 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시기의 조방꾼은 기생들의 보호자이자 파트너로서 숙식을 제공해주고 기생들이 번 돈을 나눠 가졌다고한다.
기생들의 뒤를 봐주거나 수입과 일정을 관리해주고 진상 술꾼들로 인해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처리해 주었다고 하니 마치 지금의 매니저와 같은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조방꾼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대전별감 포도청 군관, 의금부 나장 승정원 사령, 군영의 장교 종친이나 권세가의 집사 등 대부분 왕실이나 권력기관에 줄이 있어 내통이 가능한 자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기생들과 조방꾼들은 한성기생조합을 결성하였다. 서울기생조합을 시작으로 다동기생조합 등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이후 기생조합은 권번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서울의 기생은 4개의 권번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권번은 자체적으로 교습소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했는데,
평양의 기생학교는 아주 유명해서 공식적인 관광코스의 하나였다. 1948년 공식적으로 권번이 폐지되면서 조방꾼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5. 월천꾼

산과 개울이 많은 조선시대에는 이동하려면 개울을 건너야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이때 사람을 등에 업어 개울이나 강을 건너주었던 '월천꾼' 이라는 직업이 있었다.이런한 월천꾼이 언제 나타났다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에는 매우 흔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신을 벗는 것을 심각한 노출이라고 생각했다고한다. . ‘발을 보인다.’라는 말은 여인이 곁을 허락한다는 뜻으로도 통하였으므로 유방을 내보이는 일보다 더 금기시되었다.
깊은 강물이나 개울이라면 배를 타고 건넜겠으나. 물의 깊이가 얕은 곳에서 다리가 없다면 무조건 월천꾼의 도움을 받아야했던 것이다.
양반의 경우 남성도 밖에서 신발을 벗는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남성 양반도 원천꾼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개울이많은 지형적인 특징도 있었지만 조선시대 유교 특유의 문화적 요인으로 생겨난 직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계절 내내 월천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름 장마에 물이 불어 깊어지거나 겨울철 얼음이 얼기 전까지 활동한다. 초기에는 사람을 등에 업거나 목마를 태워 건너다가 이후엔 가마를 이용해 사람과 짐을 옮겨주기도 했다고한다.
월천꾼에 난장이 빠지듯’ 하는 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키가 작거나 체격이 왜소한 사람들은 하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 월천꾼에 난장이 빠지듯 [속담] : 체격 조건이 적합하지 아니한 난쟁이는 월천꾼에 끼지 못한다는 뜻으로, 무엇을 하는 데 일정한 축에 못 들고 빠지게 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참고 문헌
지역N문화 > 사라진 과거의 이색직업 >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
'초연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구순잔치- 나이를 먹는 것은 둥글어지는것이다 (2) | 2025.12.26 |
|---|---|
| 순창 누룩클래스 교육과정 모집 안내 (0) | 2025.10.25 |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케데헌) 으로 알아보는 한국의 전통문화 (3) | 2025.08.21 |
| 블루베리의 효능 (2) | 2025.08.08 |
| 블루베리 체험기 (2) | 2025.07.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