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먹는 나물이 외국에서는 독초라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의 나물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인터넷에서 유머글로 퍼졌다.
나는 일상적으로 먹던 나물들이라서 독이 있는 식물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매 끼니마다 꼭 나물 하나씩은 들어있는 것 같다.
독이 있는 식물도 데치고 무쳐먹는 우리 한국인들은 어쩌다가 나물의 민족이 되었을까?
나물이라고 하면 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식물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 식물이나 채소를 가볍게 대치고 양념을 한 한국식 반찬을 말하기도 한다.
서양권에서도 야생에서 자라는 허브나 잎채소를 먹지만. 하지만 보통은 샐러드나 요리의 일부재료 혹은 약용으로 사용한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여러 가지 채소를 즐겨 먹긴 하지만 한국만큼 산나물을 일상적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소비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한국의 나물 문화가 이렇게 발달한 이유는 산이 많은 지형적 조건, 기근과 굶주림의 역사, 풍류의 상징및 나물에대한 기호, 이렇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산이 많은 지형적조건
지형적으로 산이 많은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은 산 채소와 식물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눈에 보이는 산나물들을 먹을 방법을 고민하며 나물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을 것이다. 산에서 자라는 풀은 공짜인 데다 힘들여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좋은 먹거리였을 것이다.
기근과 굶주림의 역사
과거 한국사회특성상 거의 농업이 국가경제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근, 전쟁, 자연재해로 인해 농사를 망칠 것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산에서 나는 나물들을 정리하고, 그 나물을 먹는 방법도 책으로 만들어 배포했다고 한다.
(구황본초’에는 산과 들나물을 포함한 851종의 나물이 등장한다)
또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9~10월에 벼를 추수한 뒤 보리를 심어 5월에 추수할 수 있는데, 겨울은 추수한 벼로 어떻게 버틴다 하여도, 봄이 오면 벼가 떨어져 보리를 수확하기만을 기다리는 시기가 매년 온다. 그 기간을 '보릿고개'라고 부르는데, 특히 보릿고개인 봄철에 한반도 산야의 산나물이 구황식물 (구원할 구 거칠 황)으로써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는 역할을 맡았다. 이것이 바로 봄에 나물을 먹는 문화를 확산시킨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한다. 제철에 맞는 나물을 채취해 먹고, 일부는 잘 말려두었다가 먹을게 부족할 때 먹을 식량으로도 사용되었다. 바닷가나 섬지역에서도 온갖 종류의 해초까지도 나물로 만들어 먹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의 전란으로 나물을 더욱더 많이 이용하게 되어서 나물 요리가현대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풍류의 상징 및 나물에 대한 기호
여기까지 알아보고서 드는 의문이 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나라나 신분이 낮은 백성들은 형편이 어려워 항상 배를 굶고 살았다. 야생잡초라도 먹어야 했던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먹을게 풍족해진 지금도 유독 한국에서 산나물을 먹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산나물은 처음엔 가난과 굶주림으로 시작되었을지는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한해의 농사일과 각종 풍속들을 월별로 정리한 책인 농가월령가를 보면 나물에 대한 말이 상당 부분등장한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가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음식이라기보다는 나물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 월령 : 움파와 미나리를 무순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워하랴. 말려둔 산나물을 삶아 내니 고기 맛과 바꿀 소냐.
2 월령: 산나물은 아직 이르니, 들나물을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우나니.
3 월령: 앞산에 비가 그치니 살진 향기로운 나물을 캐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 고비, 도라지, 개나리를 일부는 엮어서 팔고 일부는 무쳐서 먹세.
-[농가월령가] 중
임금의 수라상에도 나물은 꼭 올렸다. 수라간에는 6명의 채소요리 전문가를 두고 신선한 채소를 공수해 음식을 만들었다. 봄이 되면 여러 고을에서 진상한 제철 산나물을 수라상에 올렸다. 채소가 귀했던 겨울을 보낸 후 건강도 챙기고,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갓 움튼 나물을 먹었던 것이다. 중요한 국가 제사에도 산나물을 올렸다고 한다.
봄나물은 사대부의 식사 음식이면서 풍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선비들은 나물을 소재 삼아 시를 짓고 그림올 그리며 계절의 변화가 선물하는 자연 풍경을 즐겼다.
율곡 이이의 '전원사시가 봄 편에는 이이가 봄산에 올라 도라지, 고사리, 고비, 마름, 곰취를 캐어 봄나물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시로 쓰여있다.
전원사시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입안의 맑은 향기 삼키기 아깝도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어젯밤 좋은 비로 산채가 살졌으니
광주리 옆에 끼고 산중을 들어가니
주먹 같은 고사리오 향기로운 곰취로다
빛 좋은 고비나물 맛 좋은 어아리다
도라지 굵은 것과 삽주 순 연한 것을
낱낱이 캐어내어 국 끓이고 나물 무쳐
취한 쌈 입에 넣고 국한 번 마시나니
입안의 맑은 향기 삼키기 아깝도다.
- 율곡 이이 [전원사시가] 중
우리가 나물을 즐겨 먹는 이유는 위에서 알아봤듯이 아주 복합적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산이 많기 때문에, 기호나 풍류 때문에, 국가발전속도가 너무 빨랐다 보니 전통적인 식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우리의 식문화에는 지난 시절의 문화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안타까운 부분은, 점점 나물을 먹는 문화는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다른 먹거리들도 많고, 현대인의 입맛이 자극적인 음식들에 익숙 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현대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비만과, 소화기 질병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전통의 채식문화는 현대인의 질병이라 불리는 비만을 해결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물을 조물조물 무치는 손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이 담겨 있다. 선조들의 지혜로 이어온 우리의 나물 문화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