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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시즌, 우리가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

배솔 2026. 6. 24. 15:49
황매실원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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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국, 오래된 공차기의 기억

월드컵 시즌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축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새벽 경기를 보려고 잠을 줄이고,
골 하나에 소리를 지르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하이라이트를 다시 본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공을 발로 차는 경기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물론 오늘날의 축구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스포츠다.


하지만 발로 공을 차며 즐기는 놀이 자체는
훨씬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에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축국(蹴鞠)이다.

 

사진출처 : 동경에 보이는 축국 (서울=연합뉴스) 중국 고대 동경(銅鏡)에 보이는 축국. 축국은 공을 차고 노는 고대 중국의 스포츠다. 이를 김유신과 김춘추도 즐겼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올림픽축구>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힘은 삼국시대 '축국 DNA?' 기사 사진]

‘축(蹴)’은 발로 찬다는 뜻이고,
‘국(鞠)’은 가죽으로 만든 공을 뜻한다.


말 그대로 축국은
가죽 공을 발로 차는 놀이이자 경기였다.


오늘날의 축구와 완전히 같은 경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발을 이용해 공을 다루고,
여러 사람이 함께 경기를 즐겼다는 점에서
축구의 먼 조상처럼 볼 수 있다.


축국은 중국 한나라 때 크게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한반도에도 전해졌다.


고구려 사람들도 축국을 잘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신라에서도 축국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국 이야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1- 기이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中 '축국' 김유신과 김춘추가 함께 축국을 했다는 기록(출처: 한국의 지식콘텐츠)

신라에는 축국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함께 축국을 했다는 이야기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 이야기에서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찢었다고 한다.


옷고름이 찢어지자
김유신은 이를 꿰매야 한다며
자신의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에게 만나게 했다.
이후 김춘추와 문희는 부부가 되었고,
이 인연은 훗날 신라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관계로 이어졌다.


물론 이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스포츠 경기 장면처럼 그대로 상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일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축국이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당대 권력자와 무장들도 함께 즐길 만큼
넓게 퍼진 신체 활동이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옷고름이 찢어질 정도로
몸이 부딪치고 발이 오가는 장면이다.


이것은 축국이 그저 가볍게 공을 차는 놀이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몸을 움직이고, 상대와 겨루고, 순발력과 힘을 사용하는 경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축국은 단순한 오락이면서도
때로는 무예 훈련과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몸의 균형과 발놀림, 판단력과 투지를 겨루는 활동.
지금의 축구와 시대도, 규칙도 다르지만
사람들이 왜 그 놀이에 몰입했는지는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축국은 어떻게 했을까

사진 출처 : 회화 자료에 보이는 축국. 축국은 공을 차고 노는 고대 중국의 스포츠로 축구와 비슷하다. 이를 김유신과 김춘추도 즐겼다. <<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올림픽축구> 8회 연속 본선 진출의 힘은 삼국시대 '축국 DNA?' 기사 사진]

축국에는 여러 방식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서서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발등이나 무릎, 어깨 등을 이용해 계속 차올리는 놀이였다.


오늘날로 치면
제기차기나 족구,
혹은 축구 선수들이 하는 리프팅 훈련과도 비슷하다.


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힘보다는 섬세한 조절 능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의 축국은
경쟁이라기보다 풍류와 놀이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반면 좀 더 본격적인 경기 방식도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높은 대나무 장대를 세우고,
그 사이에 구멍이 뚫린 그물을 매달아 놓은 뒤
두 팀이 공을 차서 그 구멍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오늘날의 축구 골대와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을 특정한 목표 지점으로 보내 점수를 얻는다는 점에서는
분명 현대 축구와 닮은 부분이 있다.


천 년도 더 전에
사람들은 이미 공을 차고,
목표물을 세우고,
팀을 나누어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


공 하나를 중심으로 몸을 움직이고,
규칙을 만들고,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감정은
그때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놀이가 남긴 감각

축국하는 모숩 ( 추처 : 문화콘텐츠 닷컴)

축국을 오늘날 축구의 직접적인 기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대 축구는 19세기 영국에서 규칙이 정리되며 만들어진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한반도 사람들에게도
공을 발로 차며 즐기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놀이는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이 아니라
왕족과 귀족, 무장과 백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신체 활동이자 경기였다는 것.


축구를 볼 때 우리는
빠른 패스와 슈팅,
몸싸움과 전술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도
사람들은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발을 움직이고, 몸을 던지고,
이기고 지는 감정을 나누었다.


어쩌면 우리가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대 축구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는 이미
공을 차며 뛰는 즐거움의 기억이 있었던 셈이다.


2. 근대 축구의 도입, 조선에 축구가 들어오다

 

[사진출처: 강화뉴스 알고 보면 재미가 2배, 축구의 역사  2014.06.28  ]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축구는
19세기 영국에서 규칙이 정리된 근대 스포츠이다.

한국에 축구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개항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882년 제물포항에서 시작된다.

당시 인천 제물포항에 정박한 영국 해군들이
부두 근처에서 가죽 공을 차며 놀았다고 한다.

이를 본 조선 사람들은 처음 보는 공놀이에 신기함을 느꼈고,
영국 해군들이 떠난 뒤 남겨진 축구공을 직접 차 보며 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지금과 같은 정식 축구는 아니었지만,
서양식 축구가 조선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진 순간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후 축구는 학교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1904년에는 관립 외국어학교 체육 과목에 축구가 도입되었고,
1905년에는 프랑스인 교사 에밀 마르텔이 축구공과 호각을 들여와 학생들에게 규칙과 경기 방식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클럽인 대한축구락부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대한축구락부와 YMCA가 맞붙은 경기는
수천 명의 관중이 모여들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오늘날 프로축구 경기장의 열기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120여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승부에 열광하고 있었던 것 이다.

근대 축구는 이렇게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구는 단순한 외국 스포츠가 아니라
한국인들의 감정과 역사를 함께 담아내는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된다.

 


3. 우리는 왜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축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이다.

월드컵이 열리면 거리마다 응원전이 펼쳐지고,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모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게 된 걸까?

단순히 재미있는 스포츠라서만은 아닌것 같다.

축구는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


민족의 설움을 함께 나눈 스포츠

(사진출처: 위키백과) 1930년 경기 당시 사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잃었다.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고,
민족의 자부심을 드러낼 공간도 많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축구는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1929년부터 열린 경평축구대회이다.

경성(현재의 서울)과 평양이 맞붙는 도시 대항전이었는데,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함께 모여 응원하고,
같은 편의 승리를 바라며 환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 경험이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남북화해 무드 속 서울·평양 축구대회 역사자료 무료 전시

특히 일본 팀과의 경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조선인 팀이 일본 팀을 상대로 승리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축구를 통해 대신 풀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시기의 축구를 두고

"총칼 없는 독립운동"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 독립운동과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그만큼 축구가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가난한 시대에도 할 수 있었던 스포츠

1954년 월드컵 출전 / 1954년 한국, 형가리전

축구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돈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한민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장비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는 달랐다.

[사진출처 : 서울사랑 그날의 운동] 배재학당 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경기(1910~1930년대).

공 하나만 있으면 됐다.

정식 축구공이 없어도 괜찮았다.

낡은 공,
고무공,
심지어 새끼줄을 둥글게 묶어 만든 공으로도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골대도 필요 없었다.

돌멩이 두 개를 놓으면 골대가 되었고,
학교 운동장,
골목길,
빈 공터,
논두렁 옆 공간까지 모두 경기장이 되었다.

그래서 축구는 특별한 시설 없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어른도 하고,
아이도 하고,
학생도 하고,
군인도 했다.

축구는 가장 쉽고,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2002년, 모두가 하나가 된 기억

한국 축구를 이야기할 때
2002년 월드컵을 빼놓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월드컵 역사에서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다.

당시 상대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세계적인 강팀들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경기 결과만이 아니다.

거리 응원이다.

[사진출처 :] ©브레이크뉴스 <되돌아본 월드컵> "거리응원의 자화상" / 김진영기자 2006.06.26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과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다.

전국 곳곳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직업도,
지역도,
세대도 달랐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구호를 외쳤다.

"대~한민국!"

그 순간만큼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함께 환호했고,
함께 긴장했고,
함께 울고 웃었다.

어쩌면 2002년은
축구가 스포츠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이야기

[사진 출처: 박지성 vs 손흥민 누가 더 뛰어난가 중앙일보 입력 2019.06.26 00:05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506708]

축구 열기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존재도 크다.

1970~80년대에는 차범근이 있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한국 선수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지금은 손흥민이 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것은 물론,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으로 활약하며
세계 축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매주 주말,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지켜보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특별한 경험이다.


[사진 출처 : Global Edition ]"치맥부터 거리응원까지"…외국인들이 놀란 한국 축구 문화 헬리아 기자

축국에서 시작된 오래된 공차기의 기억.

제물포항으로 들어온 근대 축구.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시대를 지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

그리고 월드컵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까지.

어쩌면 한국인이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는다.

축구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고,
기쁨과 아쉬움,
자부심과 추억을 함께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공 하나를 따라 뛰는 선수들을 보며
함께 웃고,
함께 응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