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매년 겨울마다 드는 불만이 하나 있다.
봄이 너무 늦게 온다는 것.
입춘이 지나면 뉴스에서는 남부지방의 꽃 소식을 전한다.
어김없이 매화가 피었다고, 벌써 봄기운이 느껴진다고.
그럴 때마다 화면 속의 봄은 늘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난 어릴 때 달력의 입춘이라는 글씨를 볼 때면 우리 조상들이 날짜 계산을 잘못했다고 툴툴거렸다. 서울에서의 봄은 늘 늦었다.
매서운 한파가 한 번 더 훑고 지나가고 나면,
‘아직 멀었구나’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선다. 언제까지 이렇게 추울까. 언제쯤 내 입에서 나오는 공기의 온도가 바깥과 같아질까.
그런데 겨울 한복판에서
아직 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용히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납매화다.

납매화의 이름 뜻, 생김새
납매화는 보통 1월 말에서 2월 초, 이르면 12월 말부터 꽃을 피운다.
소한과 대한을 지나, 동지섣달, 가장 추운 시기에 핀다.
가지에는 잎 하나 없이, 빈 마디마다
작고 투명한 노란 꽃이 하나씩 매달린다.
가까이 가서 보면 그 빛이 유난히 맑다.
유리처럼, 밀랍처럼 반투명한 황금빛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황금매화라고도 불렀다.
‘납’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섣달을 뜻하는 납(臘), 그리고 밀랍을 뜻하는 납(蠟).
겨울에 피는 꽃이면서, 밀랍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꽃.
이름 하나에 이 꽃의 계절과 모습이 모두 들어 있다.
납매화는 매화를 닮았다.
꽃 모양도, 향기도 그렇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매화로 불렸지만
사실 납매화는 매화나무의 꽃이 아니라 새양나무의 꽃이다.
향기가 진하다. 흥미로운 것은 멀리서 맡으면 달콤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알싸하다고한다.
정원에 납매화 한 그루만 있어도 겨울 공기가 달라진다고들 한다.
유럽에서는 이 향기에 매료되어 납매화를 ‘윈터스위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겨울에 나는 단 향기.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
꽃잎 안쪽에는 자주색 무늬가 있어
곤충에게 꿀샘의 위치를 알려준다.
꽃이 아래로 고개를 숙인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특징인데,
이는 겨울의 찬바람으로부터 곤충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다.
이런 자연의 배려가, 곤충을 보호하기위해 수그린 꽃을 보니, 대자연을 왜 어머니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지킬 것이 있는 존재들은 다 둥글어진다.
납매화의 종류
납매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 소심납매(素心臘梅)
꽃잎과 꽃술이 모두 황색, 꽃잎이 둥글고 크다. - 구심납매(狗心臘梅)
꽃잎이 좁고 뾰족하며, 꽃술은 붉은색을 띤다.

모양이 다르다 보니 ‘진짜 납매화’ 논쟁이 있지만
둘 다 납매화가 맞다.
예로부터 약재로도 쓰였고,
직박구리 새가 꽃을 따 먹는 것으로 보아 독성도 없다.
아직 덜 핀 납매화를 따
녹차잔에 띄우면,
차 안에서 천천히 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납매화는 기다리지 않는다. 봄이 올 때까지 참고 버티는 꽃이 아니다.
이미 전해의 봄부터 준비를 시작해
겨울이 오기 전, 꽃눈을 만들고
가장 차가운 시기를 골라 꽃을 연다.
봄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친구처럼

그래서일까.
옛사람들은 이 꽃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 밀양아리랑 )
노랫말 속 그 꽃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는 납매화를 만나기 어렵다.
남부지방에서도 흔한 꽃은 아니다.
하지만 초연당의 정원에는 지금 납매화가 있다.
이 황금빛 꽃과 마주친다면
봄을 조금 먼저 느낄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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