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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메이크업)의역사-1부 [서양편]

배솔 2025. 10. 17. 19:57
황매실원액

 

화장의 기원에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전쟁이나 사냥에서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위장의 목적으로 발전했다는 <위장설>



계급이나 부족,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화장을 했다는 <신분표시설>



모래바람이나, 눈병같은 것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뭔가를 바르기시작했다는 <보호설>,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돋보이게 하고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이것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것이 화장이었다는 <본능설> 등등이 있다

현대에는 <본능설>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움에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과 같아서 꾸미고 가리는 화장술과 화장품 제조 기술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기원이 어떠했던 얼굴에 치장을 하는 화장의 역사는 아주길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류의 가장 화려한 역사 화장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1. 화장의 기원 :인류발생과 동시에 존재한 화장

놀랍게도 학자들은 화장의 기원을 인류발생과 같은 시기로 추측한다.

2010년 스페인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조개껍질이 발굴되었다.

조개껍데기 안에 든 노란색 색소와 붉은색 파우더가 네안데르탈인의 화장용 재료로 추정되면서 무려 5만 년 전부터 화장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화장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2. 화장의 역사 <서양의화장>

2-1 .가장 오래된 화장의 기록 : 고대 이집트


가장 오래된 화장에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시대로 볼 수 있다.

이집트 고대 무덤을 보면 눈 주위에 마치 아이라인처럼 검은색이나 짙은 녹색으로  눈매를 선명하게 표현한 남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왕비인 네페르티티의 흉상에서도 진한 아이라인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처럼 눈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화장이 고대 이집트 화장술의 특징이다.


이런 화장법의 이유로 몇가지가 꼽히는데,

먼저 <퇴마설>이다.  
고대인들은 악마가 신체의 구멍을 통해 몸속에 들어 온다는 믿음이 있었다고한다. 그래서 악마를 놀라게 해 그들의 접근을 막으려 눈주위를 칠했다는 설도 있고,

<눈병예방 설>이 있다.
이집트 인들이 아이라이너로 사용했던 화장품에는 면역력을 높이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010년 1 과학 저널)
이러한 눈 화장은 초기에는 미용보다는 주술적, 혹은 의학적인 목적에 우선했다고 알려져 있다.


화장이 미용의 목적으로 쓰이게된 시기는 현대에도 미녀라고 알려져있는 고대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 때 부터라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짙은 눈썹과 화려한 눈화장을 하고 턱선을 따라 얼굴 바깥쪽에 음양을 주어 얼굴을 갸름해 보이도록 했다.

클레오파트라의 화장법이나 피부 관리법 등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질 정도다.

당시의 화장술이 얼마나 발전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2-2. 하얀피부에대한 갈망 : 고대그리스 - 16세기 영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바뀌지 않는 미의 기준중 하나가 바로 백옥같이 희고 잡티 없는 피부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하얀 피부를 상위 계급과 부의 상징으로 여겼고, 때문에 그리스 여성들은 백영광이라는 납 성분을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더 하얀 피부를 갖기 위해서 밤에 곡물가루 를 얼굴에 바르고 아침에는 우유로 씻어 내는 일종의 팩을 즐겨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계급이 낮을 수록 햇볕아래서 일하느라 피부가 그을려 검고, 상류층일 수록 육체노동과 거리가 멀기때문에 피부가 하얕다는 편견이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다.  


로마인들도 화장과 치장을 즐겼다.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 등 얼굴 화장뿐만 아니라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르고 머리 장식도 화려하게 꾸몄다.

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적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화장문화가 침체되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인간성의 해방을 몰고온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화장 문화는 다시 꽃피기 시작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그 시대(16세기) 가장 유명한 패션의 아이콘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은 천연두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 얼굴에 분을 두껍게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엘리자베스의 화장법이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따라했는데, 문제는 당시 파우더로 사용했던 가루에는 납과 수은이 들어있었다고한다.

때문에 당시에는 납중독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단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2-3. 17-18세기 프랑스: (무슈) 인공 점 붙이기 / 볼터치

프랑스에서도 하얀피부는 미인이 갖추어야할 요소중 하나였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대략 17세기경부터 천연두 자국을 비롯한 여러 흉터와 상처를 가리기 위해,

나아가서는 하얀 피부를 강조하기 위해 가짜 점'을 만들어 얼굴과 사회적 통념이 노출을 허락하는 피부 여러 곳에 붙이기도 했다고한다.

하얀 얼굴에 점을 찍는 것이 마치 백자 화병에 파리 한 마리가 앉은 듯 인상적 이라고 해서 프랑스 어로 파리 를 의미하는 무슈 mouche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무슈는 원래, 얼굴에 생긴 트러블이나 흉터 등을 감추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매력적인 점과는 조금 다르다. 별이나 반달 다이아몬드 까지 모양이 다양했다.

그리는 위치에 따라서 풍기는 인상의 의미도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눈 근처에 점은 뇌색적인 분위기를 준다고 생각했으며.
입술 위에 점은 장난끼가 많다는 인상을, 이마 위에 점은 위험이 있다는 인상을 몰 위해 점은 친절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슈와 더불어 18세기에는 연지 즉 볼 터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귀족들은 무도회를 갈 때 작은 상자에 무슈와 연지를 챙겼다고 한다.


3-4. 근대화장 (20세기 이후)

근대로 넘어오면서 화장 문화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화학산업이 발전하면서 화장품의 재료와 제조 기술도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아이라이너와 인조 속눈썹 마스카라 등 새로운 화장품과 화장 도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20세기에는 비로소 화장 문화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주로 상류층을 중심으로 화장품이 보급되었던 이전과 달리

사람들이 신분과 소득의 구분 없이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화장을 기본적인 매너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