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차는 왜 특별할까?

지난 글에서는 초연당이 허인옥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백차를 삽목하게 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이어서 두 편의 인터뷰를 통해 교수님께서 평생 연구해 오신 백차와 재배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는데요.
그런데 "백차는 정확히 어떤 차일까요?"
녹차나 홍차는 익숙하지만, 백차는 이름은 들어봤어도 어떤 차인지 자세히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귀한 차라고 불리는지, 다른 차와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으실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백차가 어떤 차인지, 왜 예로부터 귀한 차로 여겨졌는지,
그리고 백호은침, 백목단, 수미처럼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헷갈리기 쉬운 백차의 종류까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초연당의 백차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만큼,
백차라는 차 자체에 대해서도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2.
백차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많은 분들이 백차라는 이름을 들으면 '하얀색 차'를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백차의 가장 큰 특징은 색깔이 아니라 만드는 방식에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차는 찻잎을 덖어 산화를 막고, 홍차는 충분한 발효 과정을 거쳐 깊은 향과 색을 만들어 냅니다.
반면 백차는 찻잎에 사람의 손길을 가장 적게 더하는 차입니다.
갓 딴 어린 찻잎을 그대로 넓게 펼쳐 놓고 천천히 시들게 한 뒤 자연스럽게 말리는 과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이 시들리는 과정을 '위조(萎凋)'라고 하는데, 백차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공정으로 꼽힙니다.
위조 과정에서는 찻잎 속 수분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향과 맛이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너무 빠르게 말려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두어도 안 됩니다. 온도와 습도, 바람, 시간까지 모두 적절해야만 백차 특유의 맑고 은은한 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충분히 건조해 수분을 안정시키는데, 이 과정에서도 찻잎이 부서지지 않도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백차는 다른 차들처럼 덖거나 비비는(유념)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찻잎이 가진 본래의 형태와 향을 비교적 온전히 간직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백차는 흔히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차'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결코 쉬운 차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기술보다 햇빛과 바람, 온도와 시간 같은 자연의 조건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환경이 달라져도 향과 맛이 달라질 수 있어, 자연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기다리느냐가 백차의 품질을 결정합니다.
예로부터 "신선한 찻잎을 불에 덖지도, 비비지도 않고 햇볕에 말린 차가 차 가운데 으뜸"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송나라 시대의 《대관다론》과 명나라 시대의 《다전》에서도 백차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잘 담아낸 차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래서 백차는 단순히 가공을 적게 한 차가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차라기보다 자연이 완성하는 차입니다.
3.
백차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백차(白茶)'라는 이름을 처음 들으면 많은 분들이 "우려낸 차가 하얀색인가?"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 백차라는 이름은 찻물의 색에서 붙은 것이 아닙니다.
백차의 이름은 갓 돋아난 어린 새순을 감싸고 있는 하얀 솜털에서 유래했습니다.

봄이 되면 차나무는 가장 먼저 어린 새싹을 틔우는데,
이 새싹에는 은빛을 띠는 아주 고운 솜털이 촘촘하게 덮여 있습니다. 이를 '백호(白毫)'라고 부르는데,
이 백호가 햇빛을 받으면 은빛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특히 이 어린 새순만을 하나하나 손으로 따서 만든 최고급 백차를 '백호은침(白毫銀針)'이라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하얀 솜털(白毫)을 두른 은빛 바늘(銀針)'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차를 우려내기 전의 모습만 보아도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곧고 가느다란 새싹이 인상적입니다.
백차는 채엽 시기에 따라 종류도 달라집니다.

가장 먼저 올라오는 어린 새싹만 채취하면 백호은침,
새싹과 함께 막 펼쳐진 어린 잎 두 장을 함께 따면 백목단(白牡丹)이 됩니다.
백목단은 어린 싹과 잎이 한 줄기에 함께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활짝 핀 모란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조금 더 자란 잎을 이용하면 수미(壽眉)가 됩니다.
잎 가장자리가 살짝 구부러지고 하얀 솜털이 남아 있는 모습이 마치 장수한 노인의 눈썹을 닮았다고 하여 '수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숙성시키면 더욱 깊고 구수한 풍미가 살아나 많은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백차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백차의 이름들은 찻잎의 생김새와 채취 시기, 그리고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이름들입니다.
그래서 백차를 알고 나면 이름 하나에도 옛사람들의 관찰력과 감성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백호은침', '백목단', '수미'라는 이름은 단순히 차의 등급을 구분하는 말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순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름인 셈입니다.
4.
천 년 전에도 백차는 특별한 차였습니다
백차는 최근에 만들어진 차가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인 송나라 시대의 기록에도 이미 등장합니다.
1107년에 간행된 《대관다론(大觀茶論)》에는 백차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차는 다른 차와는 다르다. 줄기가 널리 뻗고 잎은 밝고 얇다.
벼랑과 숲 사이에서 드물게 자라며, 사람의 힘으로는 쉽게 재배할 수 없는 차이다."
또한 백차는 워낙 귀해 차를 만들 수 있는 양도 매우 적었으며,
좋은 찻잎을 얻는 것만큼이나 찻잎을 차로 만드는 과정인 '제다(製茶)' 역시 어려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 조절에 조금만 실패해도 좋은 백차가 보통 차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만드는 과정이 매우 세심하고 정교해야 한다."
천 년 전 사람들도 이미 백차가 단순하게 원료가 희귀한 차가 아니라,
좋은 원료와 뛰어난 제다 기술이 함께 갖춰져야만 완성되는 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는 백차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기록도 등장합니다.
명나라 전예형의 《자천소품》에서는 햇볕에 말린 차를 가장 뛰어난 차라고 소개하며
"사발에 넣어 우려 보면 찻잎과 싹이 천천히 펼쳐지고, 푸른 비취빛이 선명하여 그 모습이 아름답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어 문룡의 《다전》에서는 더욱 인상적인 문장을 남깁니다.
"신선한 찻잎을 불에 덖지도 않고, 비비지도 않으며, 햇볕에 말린 차가 차 가운데 으뜸이다."
오늘날 백차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천 년 전 문헌이 높이 평가했던 백차의 특징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위적인 가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맡겨 천천히 완성하는 방식, 그리고 담백하면서도 맑은 향과 맛까지.
백차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5.
백차는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아집니다
보통 음식이나 차는 신선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차는 조금 다릅니다.
백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자연 산화와 숙성이 진행되기 때문에,
잘 보관된 백차는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맛과 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래 숙성된 백차를 '노백차(老白茶)'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깁니다.
중국 차 문화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1년은 차(茶), 3년은 약(藥), 7년은 보(寶)."

처음에는 단순한 차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에 이로운 차가 되고, 더 오랜 세월을 견디면 보물처럼 귀한 차가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백차가 시간이 지난다고 좋은 노백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백차는 처음부터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올바른 제다 과정을 거친 뒤,
습기와 냄새를 피해 적절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야만 비로소 숙성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차는 조금씩 변합니다.
처음에는 은은한 꽃향과 풀향이 중심이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달큰한 꿀향이나 대추향, 깊은 나무 향이 더해지고,
차탕 역시 옅은 황금빛에서 더욱 짙고 깊은 색으로 변합니다.
맛도 한층 부드럽고 묵직해지며, 여러 번 우려도 풍미가 오래 이어지는 것이 노백차의 매력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애호가들은 백차를 '시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차'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이 세월을 지나며 깊이를 얻듯, 백차 역시 긴 시간을 품을수록 새로운 향과 맛을 만들어 갑니다.
어쩌면 백차의 가장 큰 가치는 차를 만드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6.
초연당이 백차를 심는 이유
이번 글에서는 백차가 어떤 차인지, 그리고 왜 오랫동안 귀한 차로 사랑받아 왔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천 년 전 문헌에도 기록될 만큼 특별한 차.
불에 덖지 않고 자연의 시간을 기다려 완성되는 차.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은 향과 가치를 품어가는 차.
바로 백차입니다.
초연당이 백차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해 드렸듯이, 초연당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차나무를 연구해 오신 허인옥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백차나무를 삽목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수십 년 동안 차나무 품종을 연구하며 어렵게 보존해 온 백차를 초연당과 함께 이어가기로 하셨고,
초연당은 그 뜻을 이어 우리 땅에서 백차를 건강하게 키워나가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차를 만드는 단계가 아닙니다.
좋은 차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토양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계절을 기다리며 한 그루 한 그루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래서 초연당은 이 과정을 하나의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백차가 처음 심어지는 순간부터 계절마다 어떻게 자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한 잔의 차가 되는지.
그 시간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천천히 기록해 나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백차가 충분히 자라 첫 수확을 맞이하는 날,
그리고 많은 분들과 함께 그 차를 나눌 수 있는 날까지.
초연당의 백차 이야기는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백차가 자라나는 과정을 꾸준히 기록하며 전해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