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전통한옥생활체험관 초연당

가장 한국적인것이 세계적인 것! 우리것은 소중합니다. 아름답고 우수한 전통한옥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입니다.

지친 현대인의 휠링 장소 전통한옥생활체험 초연당! 자세히보기

초연당/오천년 정원이야기

선비의 집 / 집 밖의 집 별서

초연당웹지기 2022. 9. 21. 20:17
황매실원액

 

오늘은 원림 속 작은 한옥집 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갑자기 웬 집 이야기냐고요? 

집은 내게 무엇일까? 깊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좀 쉬고 싶은 모양입니다.  ㅠㅠ

 

저는 바쁜 일과를 마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면 바닥 난 에너지가 급 충전됨을 느낍니다. 아마도 집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면서 쉴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전라남도 화순 임대정원림 / 출처 : 문화재청

 

집!
1.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고
주변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
2.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쉬며
먹고 만나고 휴식하는
생활공간!! 

 

저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보니 집은 생활공간을 떠나 심리적으로 안락함을 주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집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곳이 되면 참 이상적이고 좋을 텐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일감을 싸들고 와 야근 아닌 야근을 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돌아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지만 역시 밀린 공부와 과제로 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요즘은 주말에 교외로 놀러 나가서 머무는 집 밖의 집으로 자연 속 캠핑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별장을 마련해 두고 놀러 다닐 수 있는 주말 주택을 만들기도 합니다.

옛사람들 또한 집에서 살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손님맞이도 하며 생활했지만, 집과 가까우면서도 자연이 좋은 곳에 별도의 휴식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방해받지 않고 공부를 하거나 시를 쓰고, 벗과 술과 차를 함께 마셨습니다.

그렇기에 살림집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별채로 지었습니다. 이러한 집을 "별서"라고 합니다.

서울 성북동 별서 성락원 / 출처:두산백과

 

별서(別墅)

별서는 별장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별장은 본집과 멀리 떨어져 휴양을 목적으로 한적한 자연 풍경이 좋은 곳에 터를 잡아 짓는 반면, 별서는 본가와 아주 떨어져 있지 않고, 그저 쉬는 장소만도 아닙니다. 별서는 어느 정도 살림이 가능한 방과 온돌이 깔려 있는 주거공간으로 이 곳에 머물며 쉬기만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등 생산활동도 했습니다.

별서는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 생활을 하기 위한 곳으로, 주된 일상을 위한 저택에서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어진 별저를 지칭합니다.

별서를 만나보고 싶다면 담양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명옥헌, 송강정, 면앙정, 취가정, 소쇄원, 환벽당 등, 광주와 담양 일대에 보석 같은 집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별서는 언덕 위에 덩그러니 한 채만 있는 경우도 있고, 살림집처럼 담을 두르고 여러 채의 집을 이루어 지은 경우도 있습니다. 집을 지은 집주인의 취향, 성품과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지요. 별서로 가장 유명한 곳은 조선 최고의 정원으로 불리는 소쇄원입니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임금 시대 양산보라는 문인으로 기묘사화 이후 정치의 뜻을 꺾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평생에 걸쳐 만든 별서와 정원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자손들이 잘 지키고 보존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대표적 별서원림입니다.

보길도 윤선도원림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별서정원

별서정원은 본가의 살림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산수가 좋은 곳에 마련된 주거공간으로 정자와 더불어 조성되는 정원을 별서정원, 별서원림이라고 합니다. 

별서정원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입니다. 정원은 각처에 산재해 있지만 앞서 얘기했던 담양의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이 으뜸이며, 강진의 백운동원림, 완도의 윤선도의 부용동원림이 대표적입니다.

 

조선 최고의 원림 소쇄원(瀟灑園)

자연과 조화로운 아름다운 정원 소쇄원
조선 선비 문화의 산실

 

소쇄원 전경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쇄원은 광주 무등산의 한 자락이면서 너른 창평 들을 향하고 있는 곳으로 예부터 유복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양산보는 무등산을 앞에 두고 깊지는 않으나 조금 들어가면 속세와 인연을 끓어 버릴 듯한 적막한 자리에 계곡을 따라 정원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조선 중종 때 개혁 정치가 조광조의 급진 정책이 반발을 사 능주로 유배를 갔고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지요.  그의 젊은 제자 양산보는 이러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 벼슬길의 무상함을 깨닫고 담양 고향에 낙향하여 지석마을에서 운둔 생활을 하며 10여 년에 걸쳐 소쇄원 창건에 몰두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 맞는 벗을 만나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건물 하나하나, 심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돌담에도 선비의 마음과 추구하던 이상을 담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그의 의도와 과정이 문학으로 기록되어 남겨져 있기도 합니다. 소쇄원을 드나든 사람은 사돈 김인후를 비롯하여 송순, 정철, 송시열 등 조선 중기 최고의 지식인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담양 소쇄원 대나무 숲 / 출처 : 한국의 미 산책

 

나무 한 그루, 주춧돌 하나, 계곡의 바위 하나까지 일일이 꼼꼼하게 계산하고 계획하여 만든 정원으로 자연스럽게 기존의 자연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습니다.

소쇄원 광풍각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쇄원은 시원한 대나무 숲에서 시작합니다. 대나무 숲을 들어서면 멀리 담이 보이는데, 이 담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으로 계곡과 건물들이 보입니다. 숲을 지나면 왼편에 나무다리가 있습니다. 제주도 장인이 쌓아 만들었다는 높지 않은 담은 외부로 돌든 내부로 돌든 결국 한 곳에서 만납니다. 담을 따라 걸으면 결국 소쇄원으로 흘러갑니다. 계곡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제월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담을 따라 내려가면 광풍각이 나옵니다. 그 마당 바로 아래에 그야말로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는 계곡이 펼쳐집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처음 들어올 때 입구의 나무다리를 만나게 되며 이렇게 소쇄원을 순환하는 짧은 여정이 끝나게 됩니다. 소쇄원의 정점인 광풍각은 계곡 옆 정자로 침계문방이라 하여 머리맡에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선비의 방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합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학문과 정신 수양뿐만 아니라 풍류와 사귐을 통한 선비문화를 형성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선비문화를 위한 장소로 정자나 별서를 경영하는 일은 곧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의 실패와 좌절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지게 된 소쇄원입니다. 비운의 선비 양산보는 조선의 개혁을 꿈꿨지만 스승의 죽음으로 꿈꾸던 자신의 이상마저 좌절되자 현실의 도피처로 자연의 안락함을 찾았습니다. 그의 나이 17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나약한 한 사람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아픔이 소쇄원의 풍류적 분위기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쇄원의 오곡문 / 출처 : 한국의 미 산책

 

양산보는 그가 죽을 때 유언으로 남겼는데,

다른 이에게 팔지 말며,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이며,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라
- 양산보 유언-

후손들은 양산보의 유언을 잘 받들어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별서를 잘 가꾸고 보존해 준 덕에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게 된 것이겠지요.

 

원림과 정원

정원과 원림()은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주로 "원림"을 사용하고 일본의 경우 "정원"을 주로 선호한다고 합니다. 정원은 주택에서 인위적으로 조경작업을 통하여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원림은 교외의 동산과 숲과 같은 사람의 손이 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조경대상으로 삼아 적절한 위치에 인공적인 조경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집과 정자를 적절하게 원래의 자연 삼림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