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전통한옥생활체험관 초연당

가장 한국적인것이 세계적인 것! 우리것은 소중합니다. 아름답고 우수한 전통한옥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입니다.

지친 현대인의 휠링 장소 전통한옥생활체험 초연당! 자세히보기

초연당/오천년 정원이야기

옛사람들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

초연당웹지기 2022. 7. 25. 23:31
황매실원액

 

우리 초연당에는 유난히 많은 나무가 심어져 있고 야생화들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오래된 전통 한옥이나 고궁에는 상당히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요.

우리 초연당 오천년정원에는 나이가 많은 고목들이 많고 토종 야생초들도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는 걸까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궁금해지네요.

 

옛 조상 들은 어떤 의미와 목적으로 나무를 심었을까요?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최종현 교수의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을 발견하고 바로 대출해 왔습니다. 제게는 많이 어려운 책이네요. ㅜㅜ.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일단 내용을 공유해 봅니다. ^^

 

 

우리 옛사람들은 어떤 나무를 심었을까?

 

사람들이 목적이나 동기에 의해 나무를 심는 일을 식목(植木)이라 합니다. 목적과 그 의도에 따라 나무가 심어진 상태를 배식(培植)이라고 합니다. 우리 전통적인 배식 형태는 나무 한그루가 있는 독립수, 두 그루가 대칭으로 심어져 있는 쌍수, 줄을 서서 심어진 열수, 무리를  지어 심어진 군식수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독립수

단수인 독립수는 『삼국유사』 단군 조선 조의 '신단수'부터라고 합니다. 고구려 고군벽화에서도 독립수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독립수의 특징은 신격이나 상징성을 갖는 것이 특징입니다. 수종은 낙엽수, 상록수든 교목이 일반적이며, 농촌 마을 어귀나 마을 부근에 있는 당나무, 정자나무 등도 독립수의 한 유형입니다.

쌍수

쌍수인 상대수는 어떤 중심이 되는 장소, 건축물이나 조영물 등의 전면 좌우에 대칭으로 배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궁궐, 관아나 기타 건축물 배치에서 중심축 선상에 놓이는 조영물이나 건축물 좌우에 상징성이 있는 나무를 심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한 예로 경희궁 안의 계마수조(繫馬樹棗, 말을 매어 놓기 위해 궁전 뜰에 대칭으로 심어 놓은 대추나무)

열수

열수는 같은 종의 나무가 같은 간격을 유지하면서 배식된 유형입니다. 길이나 뚝, 밭이랑 등에 바람을 막기 위해 이렇게 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또 물가에 물이 굽이쳐 물길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 또는 연약한 지반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를 줄지어 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열수 배식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열수는 동일한 종의 나무를 사용했고 수종으로는 전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을 많이 심었다고 해요.

군식수

불규칙한 형태로 여러 종류의 수목을 심는 것을 말합니다. 관목이나 교목 등이 무리를 이뤄 화초와 섞여 심겨 있는 것도 군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 세나라 모두가 원림을 조성할 때 쓰던 배식 방법입니다. 관목인 꽃나무가 주류이며, 교목도 극히 제한적으로 쓰인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동명왕릉, 5세기초

 

 

삼국시대 나무 심기

삼국시대 궁궐에는 전각 앞쪽 뜰 안에 회화나무와 측백나무를 심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키가 큰 교목은 나무 그늘을 만들어 쉴 수 있게 해 주는 정자목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같은 기능을 가진 나무들이 가로의 길 옆에 있었는데 이런 나무들을 노방수(路傍樹)라 불렀다고 합니다. 노방수는 시대가 지나면서 누정의 정자목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삼국 시대에 나무를 심었던 형태 가운데에서 특히 산을 만들고 정원을 꾸미는 법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진사왕 7년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는데, 못을 파서 물을 끌어 들이고 파낸 흙을 쌓아서 못 주변에 산을 만들 후 그 산 위에 수목과 화훼를 조성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무들은 다양하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 (), (), (), ()” 등의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봄에 피는 꽃나무, 상록수인 소나무, 버드나무 등 다양하게 심었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나무는

대나무, 소나무, 밤나무, 매화, 배나무, 회화나무, 버드나무 등 일곱 나무입니다. 관목으로 뽕나무, 차나무 2종이고, 대체적으로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상수리나무, 느릅나무, 갯버드나무, 가래나무, 측백나무, 수유나무 등의 교목입니다. 이런 나무는 중국의 『시경』, 고전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경주읍내전도> 작자 미상, 문화재연구소 소위

위 <경주읍내전도> 그림은 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던 숲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그림입니다. 아래쪽부터 오릉과 계림의 군식수, 곡렬수(曲列樹), 묘정에 있는 독립수와 군식수 등이 보입니다. 특히 건축물의 지반을 보호하기 위해 천변에 열을 지어 심은 나무들도 보입니다. 그림 속 나무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고 합니다.

<영지> 영지는 고려시대 학자 이자현이 조성한 연못

 

 

고려시대 나무 심기

고려 시대 나무 심기 역시 삼국시대 배식 형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나무 관련 고려 시대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한 예로 정종 7년(1041) 2월 초하루에 공부상서가 송악산 동서 기슭에 소나무를 심어 궁궐을 장엄하게 하기를 청하니 왕이 이 제의를 따랐다는 내용이고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군식수 형태의 나무 심기로 왕권 강화의 수단을 삼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입니다. 늘 푸른 소나무의 특성에 빗대어 왕권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고려 후기에는 누정(누각과 정자)을 조영하고 그 주변에 원림을 조성하는 사례가 매우 많아졌습니다. 대체로 강이나 천이 돌아 흐르는 물가에 임해서 누정을 지었지요. 주변에 화초, 꽃나무, 과일나무 등을 심어 화원을 조성하거나 모란처럼 특별한 종류의 꽃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시연을 베푸는 사례도 많이 보입니다.

덕수궁 화계의 모란꽃 뒤로 석어당이 보인다 [출처:스타트업엔]

의종(1146~1173)은 누정이나 원림에 관련된 기록이 많은 왕입니다. 의종 당시 청명절 행사에 대한 문헌에 '연흥전'이 등장하는데 그 남쪽에는 시냇물이 둘러 있으며 좌우에 송죽과 화초를 심었다고 합니다. 또한 의종은 '연복정'이라는 정각을 지었으며 사방에 꽃과 진기한 나무들을 심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의종 11년 4월에 "태평정을 짓고, 그 정자 주위에 유명한 화초와 진기한 나무를 심었는데, 옥돌을 다듬어 환희대와 미성대를 쌓고 기암괴석을 모아 선산을 만든 다음, 먼 곳에서 물을 끌어 들여 폭포를 만들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사치스럽고 화려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공민왕 역시 원림을 조성했는데요. 재위 22년 6월 "이현에 화원을 만들고 2층으로 된 팔각정을 지었는데,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연회와 유흥에 쓸 수 있게 준비하였다"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누정 같은 건축물을 따로 짓지 않고도 사람들의 쉼터로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정자목을 심는 사례 역시 많았다고 합니다.

 
초연당에 정원에 있는 옥호루와 연못 주변 나무와 화초
초연당 신축된 목조건물 옆 백일홍 고목나무

 

 

조선시대 기록 속 나무 심기

조선시대에는 이전 시대에 비해 나무에 대한 기록들과 내용이 더 훨씬 많습니다. 나무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기록이 특히 많이 보입니다. 『태조실록』 태조 1년 7월에 기록되기를 "의주에 큰 나무가 있는데 말라 썩은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개국하기 1년 전에 다시 가지가 무성하니, 그때 사람들이 개국의 징조라고 말하였다", 큰나무 한 그루는 독립수일 테고 교목이였을 것입니다. 나무의 회생이 조선 개국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는 듯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장주묘암도>매화, 복숭아꽃이 좌우로 대칭해서 배식됨

영조 시대의 <장주묘암도(漳州茆菴圖)>는 주자의 행적과 성리학에 대한 영조의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나무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림 전면 중앙에 사정(射亭)을 좌우로 전나무와 소나무가 있고, 원형의 대나무 숲이 있으며, 사정을 축으로 매화와 복숭아꽃이 좌우로 대칭해서 배식되어 있습니다. 이 <장수묘암도>는 당시의 수목 배식의 한 양식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림 중심에 있는 매화를 군자로 빗대어 강조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배식 형태 연구에서 왕릉을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연구자료입니다. 왕릉을 관리하기 위해 주변에 원림을 조성하여 영역을 정하고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전통이 유지되며 이어왔습니다.

수로왕릉 우측 돌담 사이 수문장 같은 고목

『정조실록』 정조 4년의 기록에는 "수로왕릉에 치제(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 제사를 지내던 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예전에 선조에서 수토산(守土臣)에게 명하여 수로왕릉의 사방 100보에 돌을 세워 표하고 능영을 개축하게 하여 해마다 봄가을에 부중(벼슬아치의 집안)의 부로(나이 많은 어른)를 모아 제사 지내는 것을 항식(형식이나 법식)으로 삼았으니, 성의를 우러러 알 수 있다. 대개 사적(업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묻은 지 1000년 가까운데 봉토가 어지러워지지 않고 구목이 썩지 않아서 그 능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신라시대의 왕릉과 그 주변의 나무들을 100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돌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굉장하네요.

소나무는 수요의 폭이 넓고 필요한 양도 많았지만 키우고 기르는 것이 까다로워, 소나무 관리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세종 29년에는 "도성 사산의 소나무가 벌레의 피해로 말라죽기 쉬우므로 밤나무를 심으려고 하니, 밤 종자 10여 석을 상림원으로 보내라"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 16년에는 "남산의 안과 밖, 백안산, 무악산, 성균관동, 인왕산 등처럼 소나무가 희소한 곳에는 잣나무나 도토리나무 등을 심게 하라", 세종 5년에는 "소나무는 집을 짓고 배를 만들게 되니, 소용이 가장 긴요하므로 일찍이 금령을 세워, 사재감의 소나무 홰(송거松炬)는 유목과 상목으로 대신하고, 기와 굽는 굴에 땔 나무는 모두 잡목으로 사용하게 하였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가장 중요한 나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땔감으로 소나무를 쓰지 말고 다른 나무를 심어 쓰도록 하는 임금의 명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정조가 세운 영괴대

조선시대 기록 가운데 임금의 행차를 기념하는 기념수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조는 온양의 행궁에 영괴대비(靈槐臺碑)를 세웠는데, "경진년 온천에 갔을 때 회화나무 세 그루를 직접 심어둔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정조는 화성의 공사를 끝낸 후 "갑인년에서 정사년까지 매년 봄가을에 도합 7차례에 걸쳐서 풍실, 송자, 지자, 상심, 생률, 상실 등의 씨앗을 비롯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떡갈나무" 등의 여러 나무를 성 안팎에 심었다고 합니다.

 

<천하도> 동서북으로 나무가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에는 <천하도> 계열과 <천지도> 계열이 있는데 <천하도>는 조선 시대의 독특하게 발달한 상징적 우주관을 표현했습니다. 지도 동서 북쪽에 각각 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부상, 반격송,천리반송 이라 부르는 나무로 부상목은 동해상의 신목으로 이곳에서 해와 달이 떠오른다고 믿었고, 서해상의 신목인 반격송으로 해와 달이 저문다고 믿었습니다. 북쪽의 천리반송은 하늘과 소통하는 우주목으로 우주의 중심을 의미했습니다. 우주목을 중심으로 좌우, 즉 동서로 쌍수가 대칭을 이루고 있는 형태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나무심기 형식은 옛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조영 형태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선조에게 나무는 그저 보기 좋으라고 심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죠.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의미와 기능이 분명히 있었고 그만큼 나무를 귀히 여겼습니다.

정원 가장자리에 큰 백일홍나무

현대에는 외래종도 많고 개량종들도 많아서 나무를 심는 형태 역시 우리의 전통식이 아니라 외국 방식을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의미를 담았는지 궁금했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의 3장 「우리 옛사람들은 어떤 나무를 어떻게 심었을까」 내용의 일부를 이용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