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식들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음식이 빨갛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찌개, 탕요리부터 돼지나 닭등의 고기와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까지 고춧가루나 고추장이 들어간 빨간 음식들이 특별히 많다.
우리 고유 음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김치를 비롯하여 우리 음식에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로 현재 우리 식생활에서 고추는 뗄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추를 언제부터 사용했고, 언제부터 매운맛을 즐기게 되었을까?
고추의 유입 (16세기 이후)
고추가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해 졌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유입설과 북방(중국) 전래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둘 중 일본유래설이 더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 유래설에 따르면 고추가 이 땅에 전래된 것은 16세기 이후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일본을 나가사키에 고추가 전해졌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본을 통해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추를 언급한 최초의 문헌인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당시 술집에서는 고추의 매운맛을 이용하여 소주에 고추를 섞어서 팔아 그 술을 마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과는 달리 우리 조상들은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ㅋㅋ...) 이렇듯, 당시까지만 해도 고추는 하나의 작물일 뿐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고추의 상용화 (18세기 이후- 소금 대체제)
그러다 18세기 이후 고추가 드디어 음식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소금값 폭등이었다. 당시 조선에는 향교와 서원이 증가하면서 제사가 많아졌고, 이때 제사에 쓸 어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소금대신 고춧가루로 간을 하기 시작했다.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부터이다. (이전에는 동치미나 백김치 같은 형태의 김치를 주로 먹었다.)
매운 음식산업 시작 (1950 한국전쟁 이후 - 매운 음식의 시작)
고추를 음식에 사용하던 초반의 김치는 배추를 숙성시켜 절인다는 본질에 충실했지만, 1950년을 지나며 그 본질이 서서히 ‘매운 음식’으로 바뀌어간다.
국립민속박물관 안정윤 학예연구원의 2009년 논문 <고추, 그 매운맛에 대한 역사민속학적 시론-한국 사회는 왜 고추의 매운맛에 열광하는가>를 살펴보면 고추의 매운맛이 더욱 확산된 시기를 1950년대로 보았다. 그는 “6·25 전쟁, 빈곤과 기아의 스트레스가 매운맛을 찾게 했다”라고 추론한다.(1953년 고추장을 사용한 신당동 떡볶이 -> 1960년대 무교동 낙지볶음, 대구의 매운 갈비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매운 음식을 먹고 털어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게 사실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매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의도적으로 통각을 주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엔도르핀은 통각을 억제하며 잠깐동안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라도 잊고자 하는 문화가 이어져감에 따라 고추는 본격적으로 매운 음식을 위한 재료가 되었다.
매운맛이 강해지는 시점 = 고통의 시기
- 1960~80년대 고도성장, 압축성장
매운맛은 한국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1960~80년대 고도성장, 압축성장이 낳은 아픔이었다고 보는 자료도 많다.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라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가 되었다. 가족 같은 공동사회인 농촌에서 대도시로 떠난 사람들은 경쟁사회에 시달리며 스트레스와 고립감을 느꼈다. 그런 고통을 잠시라도 잊고자 매운 음식들을 찾았고, 음식들은 점점 매워지기 시작했다.
식당 주인이나 점원분을 이모, 삼촌등 친인척을 부르는 명칭으로 낯선이들을 부르는 문화도 이때부터라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사람들은 식당 직원들에게 친인척을 부르던 호칭을 사용해서라도 공동사회 특유의 안정감을 잠시나마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기술적 배경으로는 1980년대에 청양고추가 개발되며 음식의 맵기가 더 강해졌다.
계속해서 매운맛이 강해지는 이유는 삶의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나마 매운맛으로 해소한다는 문화가 계속 퍼져있는 상황에서 현재 매운맛이 익숙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더 매운맛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1997년 IMF 외환위기 / 2010년대 청년 취업불황
외래종 고추를 사용하며 극단적으로 매운 음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서 비롯되었다. 세계적으로 봉지 불닭볶음면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불닭볶음면은 1990년대 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에 편승해 엽기떡볶이, 매운 닭발이 함께 퍼져나갔다. 매운맛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심리적 쾌감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은 사회문화적 상황과 밀접하다. 단순히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라도, 매운 음식을 먹고 나오는 엔도르핀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2010년대는 청년실업문제가 대두되고, 경제성장도 더뎌지는 상황이 찾아오자 ‘헬조선’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찾아온 것이 '마비될 것 같은 매움'이라는 마라탕 열풍이다. 최근에는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챌린지처럼 여겨지고, sns에서 엄청난 인기와 함께 빠르게 퍼지게 되었다. 관심은 돈이 된다. 매운맛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알아챈 기업들은 경쟁하듯 더 매운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를 치료와, 상담보다는 극단적인 음주로 풀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기분전환을 시도하는 문화가 아직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국음식은 처음부터 매운맛이 아니었다. 매운맛 음식은 한국의 전통성이라기보다는 기업들의 상술이고, 한국 문화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힘든 일은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고,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의 고통을 돌볼 관심도, 시간도 없는 우리 한국사람들이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길 바란다. 사회적인 시선, 이른바 '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아직까지 정신병원이나 상담센터에 다니길 꺼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고립과, 불안 같은 극단적인 감정은 일시적으로 잊거나, 시간이 지나 무뎌진다고 해도 다 쌓여서 나를 소모하고 갉아먹는다. 도움을 받고, 좋은 대화와 적절한 치료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매운맛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참고문헌
우리 역사넷 >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제1장 땅에서 나는 우리 음식 재료 > 2. 빼놓을 수 없는 보조 음식, 채소
조선경제- 생활경제 - 한국이매운 맛 종주국 된 이유
오마이뉴스 - 한국음식이 매운 이유? 사회경제 구조와 밀접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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